한자 | 新興 講習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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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문 | 新兴讲习所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교육/교육 |
유형 | 기관 단체/학교 |
지역 | 길림성 통화시 유하현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성격 | 독립군 양성 무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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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자 | 이시영|이회영|이동녕|이상룡 |
개교 시기/일시 | 1911년 6월 10일 |
폐교 시기/일시 | 1920년 |
이전 시기/일시 | 1912년 |
이전 시기/일시 | 1919년 5월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20년 10월 |
최초 설립지 | 길림성 유하현 삼원보 |
신민회의 국외 독립운동 기지 건설 일환으로 서간도 유하현·통하현 등지에 설립된 대표적인 무관 학교.
국망을 전후하여 신민회는 중장기적인 계획에 따라 국외 독립운동 기지 건설에 박차를 가하였다. 우당이회영 가문은 국내 자산을 처분하여 1910년 12월 압록강을 건너 서간도 유하현으로 집단 망명했다. 뒤를 이어 안동 혁신유림인 이상룡·김대략·김동삼 가족도 이곳으로 망명을 결행하였다. 이들은 이주 한인의 권익 옹호와 대동단결을 위한 경학사를 조직하는 한편 독립군 간부 양성을 위한 신흥 강습소를 설립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교명을 신흥 강습소로 한 이유는 불필요한 오해를 없애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정립하려는 의도였다. 현지 중국인들은 이주한인을 일본인의 ‘앞잡이’로 인식할 정도로 배타적이었다. 옥수수 창고를 빌려 개교식을 거행할 수밖에 없었던 저간의 사정도 이러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았다. 신흥은 신민회의 ‘신’자와 다시 일어난다는 ‘흥’자를 의미한다. 신흥 강습소는 중등과정 교육뿐만 아니라 군사과를 두어 독립운동 전사를 길러내려는 뚜렷한 목표로 출발하였다. 그 결과 1911년 12월 제1회 졸업생 40여 명을 배출하였다.
1912년 망명지사들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하여 추가가에서 90리 떨어진 통화현 합니하(哈泥河)로 이주하였다. 7월 20일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신흥 무관 학교 낙성식을 거행한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다. 이곳은 천연요새로 이주한인이 염원하던 독립운동기지로서 손색이 없었다.
1919년 3·1 운동의 영향으로 신흥무관학교를 찾아오는 청년들이 더욱 많아졌다. 이에 학교는 조선인이 많이 거주하고 교통이 편리한 유하현 고산자 부근의 하동 대두자로 본부를 옮겼다. 합니하신흥무관학교는 분교로 삼는 동시에 통화현 쾌대무자에도 분교를 운영하는 체제로 전환되었다. 1919년 5월 3일 고산자신흥무관학교 개교식을 거행하는 등 학교를 더욱 확장시켰다. 1920년 이후 일제의 탄압으로 무장 투쟁 세력이 근거지를 이동하자 현지에서 교육활동은 중단되었다.
신흥무관학교 교관들과 졸업생들은 백두산 서편인 통화현 쏘배차에 군사기지인 백서 농장을 만들었다. 1914년 가을부터 벌목을 시작하여 수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군영을 완성하였다. 중국측의 동향을 의식하여 농장으로 명칭을 정하였으나, 사실상 군사기지였다. 백서 농장에서는 병농일치에 의한 정예병 양성을 목적으로 혹독한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한편 민족의식 고취를 위한 한글·역사·지리 교육 등도 시행하였다. 군사 교과목은 격검·축성학·편제학 등과 함께 전술학은 물론 훈련교범·위수복무령·육군형법·육군징발령 등 장차 독립군으로서 자질을 연마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정신교육도 구국 대의를 생명으로 한다는 방침에 따라 엄격하게 진행되었다. 불의에 반항하는 정신, 임무에 희생하는 정신, 체력을 바탕으로 필승하는 정신, 가난 가운데서도 인내하는 정신, 건설을 위한 창의정신 등을 고취하였다.
신흥 강습소의 교관들은 교가를 통한 민족의식 고취에 노력하였다. 주요 내용은 항일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부여하는 내용으로 일관되었다.
제1절 서북으로 흑룡태원 남의 열절의 / 여러 만만 현현 자손 업어 기르고
동해섬 중 어린것들 품에다 품어 / 적먹여 준 이가 뉘뇨
(후렴) 우리우리 배달 나라의 / 우리우리 조상들이라
그네 가슴 끓는 피가 / 우리 핏줄에 콜콜콜 걸치며 돈다
제2절 장백산 밑 비단 같은 만리 박원은 / 반만년 래로 피로 지킨 옛집이어늘
남의 자식 놀이터로 내어 맡기고 / 좀 서름 받느니 뉘뇨
(후렴) 우리우리 배달 나라의 / 우리우리 자손들이라
가슴 치고 눈물 뿌려 통곡하여라 / 지옥의 쇳문이 온다
제3절 칼춤 추고 말을 달려 / 달련코 새론 높은 인격 정신을 길려
썩어지는 우리 민족 이끌어 내여 / 새나라 세운이 뉘뇨
(후렴) 우리우리 배달 나라의 / 우리우리 창년들이라
두팔 들고 고함쳐서 노래하여라 / 자유의 깃발이 떳다
졸업생과 신흥 무관 학교 교관 등으로 조직된 신흥 학우단은 『신흥학우보』를 발간하는 등 이주한인 청소년들에게 독립정신을 일깨우는 가교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는 부민단·한족회 등의 한인자치단체와 유대를 공고히 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