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담산 산성[길림시]

한자 龍潭山 山城[吉林市]
중문 龙潭山城[吉林市]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길림성 길림시 용담구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구려|고대/남북국 시대/발해
상세정보
성격 성곽
양식 성벽
크기(높이 밑바닥 너비 3∼10m, 윗부분 너비 1∼2m, 잔고 2∼10m. 성벽 길이 약 2,936m
현 소재지 길림성 길림시 용담구
정의

길림성 길림시 용담구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산성.

건립 경위

용담 산성은 동단 산성, 삼도령자 산성과 함께 길림 지역에 있는 대표적인 산성이다. 길림 지역은 원래 부여에 속한 지역이었다. 광개토왕릉비의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의 세력이 이 지역에까지 미친 것은 광개토왕 시기였다. 고구려가 이 지역에 성을 세운 목적은 원래 동쪽으로 흐르는 송화강 유역에 거주하던 말갈족의 남하를 방어하기 위한 것이다.

위치

용담 산성은 길림시 중심부에서 동쪽으로 7㎞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용담산의 동면과 남면은 기복이 심한 산등성이다. 용담산은 화분형으로 생겼는데 중간은 깊은 골짜기이며, 성벽은 주위의 산등성이 위에 쌓여있다. 산성의 동남쪽에는 마권자 산성(馬圈子山城)이 있어 용담 산성을 올려다보는 형태로 서로 호응하고 있다.

형태

성벽의 둘레는 2,936m이며 가장 높은 성벽은 10m, 가장 낮은 곳은 2m 이하이고 기단 폭이 3∼10m, 상부의 폭은 1∼2m 정도이다. 성벽은 산 능선을 따라 암반 위에 축조하였는데, 잘 다듬은 돌을 정연하게 쌓아 올렸으며, 안쪽은 황토 진흙과 응회암 자갈을 섞은 토석 혼축(土石混築)으로 보강하였는데 황토만을 다져서 쌓은 것도 일부 있다.

성의 형태는 남북이 길고 동서가 좁으며 서쪽과 동쪽이 높은 말안장 형태로서, 성벽의 길이는 2,936m이다. 성의 내부는 중앙은 낮고 주위가 높은 형태로서 성 안의 서북쪽 저지대에 방형(方形)의 연못이 있는데 용담(龍潭)이라고 부른다. 산성의 명칭이 여기서 유래하였다. 연못은 동서 길이 52.8m, 남북 길이 25.7m, 깊이 9.08m로 매우 크며, 다듬은 돌로 3층의 계단 형태로 축조하였다. 연못 북쪽에는 성벽까지 이어지는 배수로가 있어 물이 흘러간다. 이로써 연못과 성벽이 동시에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샘과 우물이 남아 있다.

또 성 안의 서남쪽에 직경 10.6m, 깊이 2∼3m의 원형의 돌로 쌓은 구덩이가 있는데, 한뢰(旱牢)라고 부른다. 군사 물자의 저장고로 추정된다. 성 안에서는 고구려 후기의 기와편과 철화살촉·철도끼·철못이 상당수 발견되었으며, 연못에서는 요(遼)·금(金) 시대의 유물도 출토되어, 상당히 후대에까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용담 산성은 그 규모나 지리적 위치에서 볼 때 고구려 당시에도 방어상 중요한 기능을 하였을 것으로 짐작되는 바, 당군(唐軍)과의 격전지인 고구려적리성(積利城)에 비정되기도 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용담 산성은 고구려 후기의 부여성이고 고구려가 장성을 쌓을 때 동북쪽은 부여에서 시작하였는데 바로 이곳을 가리키는 말이다’라는 현지인의 고증이 제시된 바 있다. 이 말이 옳다면, 부여성은 이 성을 이야기 하는 것이며, 성의 중요한 의의를 알 수 있다.

참고문헌
  • 최무장· 임연철, 『고구려 고분 벽화』(신서원, 1990)
  • 임직수, 『고구려 도성과 산성』(청구학술논총 5, 1994)
  • 고구려 연구회,『고구려 산성 연구』(학연 문화사, 1999)
  • 전호태, 『고구려 고분 벽화 연구』(사계절,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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