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부

한자 正義府
중문 正义府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길림성 길림시 화전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 단체
설립 시기/일시 1924년 11월 24일
해체 시기/일시 1929년 이후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25년 3월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27년 이후
정의

1920년대 남만주 독립운동계의 대통합에 의해 설립된 독립운동 단체

개설

정의부는 1920년대 중·후반 남만주를 근거지로 하여 재만 독립운동을 주도하였다. 입법·사법·행정 등 3권 분립 체제를 갖춘 중앙 조직과 한인 사회에 총관구·지방·백가장·십가장 같은 지방 조직을 갖추고 이주 한인 사회를 총괄하며 독립운동을 펼쳤다. 이러한 조직을 바탕으로 정의부는 산업 부흥·언론·교육 활동을 펼쳤으며, 산하에 의용군을 편성해 항일 무장 투쟁을 펼쳤다.

설립 목적

1920년대 중반 재만 독립운동계의 지도자들은 보다 효율적인 항일 무장 투쟁을 위해 독립군의 대통합을 희망하였다. 이에 지도자들은 1923년 이래 몇 차례의 회합을 갖고 여러 단체의 통합을 추진한 결과 서로 군정서(西路軍政署)·길림 주민회(吉林住民會)·대한 통의부(大韓統義府)·의성단(義成團)·고본계(固本契)·카륜 자치회[卡倫自治會]·노동 친목회(勞動親睦會)·대한 광정단(大韓光正團) 등 8개 단체를 통합하여 1924년 11월 24일 남만의 독립운동을 주도할 정의부를 설립하였다.

변천

정의부는 비슷한 시기에 성립된 참의부(參議府)·신민부(新民府) 등과 함께 3부로 일컬어지며, 1920년대 중·후반 재만 독립운동을 주도한 단체였다. 정의부는 입법·사법·행정의 3권 분립 체제를 갖춘 중앙 조직을 설치하고, 하얼빈 이남의 약 40개 현에 거주하는 한인을 관할하며 생활을 지원하는 민정 활동을 펼치는 한편, 예하에 무장 독립군을 두어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하였다.

정의부의 중앙 조직은 중앙 행정위원회, 간정원, 중앙 심판원, 민사 위원회, 군사위원회, 법무 위원회, 학무 위원회, 재무 위원회, 교통 위원회, 생계 위원회, 외무 위원회 등과 중앙 의회 및 무장 활동을 펼치는 의용군이 있었다.

정의부는 중앙 조직 이외에 한인이 밀집한 촌락에는 한인 가구 1,000호를 한 단위로 묶어 총관구를 설치하고, 그 밑에 500호로 지방, 100호로 백가장, 50호로 구, 10호로 십가장이 임명된 지방 조직이 있었다.

이와 같은 조직을 갖춘 정의부가 관할 한인을 위해 가장 중점을 두고 펼친 것은 민족의 생존을 위한 산업 부흥 활동이었다. 1925년 3월부터 정의부는 공농제를 실시하였다. 공농제는 공농 수익금을 조성해 농구를 구입해 한인들에게 대여해 주는 한편, 남은 금액은 싼 이자의 농업 자금으로 대출해주는 것이었다.

정의부는 농촌 공회 통칙을 만들어 각 촌락 단위로 공동 기금을 마련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농기구를 구입하게 하고, 농자금을 대출할 수 있도록 했다. 자금이 충분한 곳은 농지까지 구입해 이를 공동으로 경작해 수입을 창출하도록 하였다.

이외 정의부는 『정의부공보』·『대동 민보』 등과 같은 언론 매체를 만들어 한인들에게 새 소식을 전달했다. 소학교·중학교·여자 중학교·직업 학교·사범 학교와 같은 학교를 만들어 한인 자제들에게 민족 교육을 시키는 한편,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직업 교육도 실시하였다.

그런가 하면 무장 활동을 목적으로 한 의용군은 중국만주 내에서의 활동은 물론이고 국경을 넘어 국내 진입전도 활발히 펼쳤다. 국내 진입전은 유격대를 편성해 함경도와 평안도에서 일제 군경 초소를 습격하기도 군자금 모금 활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또 만주 내에서는 모험대·암살대·보안대·모연대 등의 명칭으로 각 지역에 파견되어 활동을 펼쳤다.

남만을 무대로 1920년대 후반까지 활동한 정의부는 1927년 초부터 일어난 민족 유일당 운동에 참여했다가 구성원 대부분이 남만주를 근거로 한 국민부와 북만주를 근거로 한 한국 독립당에 가담하면서 해체되었다.

의의와 평가

정의부는 1920년 10월부터 행해진 경신 참변 이후 흩어진 독립군들의 진영을 정비하고 보다 강력하고 체계적인 항일 무장 활동을 위해 성립된 단체였다. 정의부는 항일 무장 활동과 더불어 이주 한인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여러 자치 활동을 실시해 그들의 삶을 지원하였다. 정의부는 1930년대를 넘어 광복이 되기까지 재만 독립운동계의 항일 활동을 지속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다.

참고문헌
  • 채근식, 『무장 독립운동 비사』(대한민국 공보처, 1949)
  • 채영국, 『한민족의 만주 독립운동과 정의부』(국학 자료원, 2000)
  • 한국 독립 유공자 협회 엮음, 『중국 동북 지역 한국 독립운동사』(집문당, 1997)
관련항목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