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창 병원

한자 濟昌 病院
영문 제창 병원|캐나다 장로회|바커|마딩|노은혜|용정|독립선언서|용정 3·13만세시위운동
중문 济昌医院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의료 기관
설립자 캐나다 장로회
설립 시기/일시 1913년
해체 시기/일시 1941년 3월
최초 설립지 용정시
정의

1913년 캐나다 장로회에서 북간도 용정에 세운 병원.

설립 목적

19세기 말 서양 열강들은 한국에 많은 선교사들을 파견하여 기독교를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1884년 9월 미국 북장로회, 1885년 4월 미국 북감리회에 이어 1890년대까지 호주 장로회, 영국 성공회, 미국 남장로회, 미국 남감리회, 캐나다 장로회 등이 한국에서 선교를 시작하였다. 이들 교파의 대부분은 선교를 위한 수단으로 의료와 교육을 앞세웠다. 특히 이 시기 그들은 한인 이주민들을 따라 북간도에 들어와 선교를 하기 시작하였다.

변천

1913년 캐나다 연합 교회 선교사 바커(A.H. Barker) 부부가 용정촌 동산[세칭 영국더기, 일본 총영사관 뒤 언덕]에 제창 병원을 세웠다. 제창 병원의 건물은 반 지하실이 딸린 100여 ㎡의 회색 양옥 이었다. 1918년 10월에 증축하여 내과·외과·부인과·소아과·전염병과 진찰부를 두었다. 선교사이며 의학 박사인 마틴(S. H. Martin, 閔山海)이 원장이었고, 영국인 노은혜 여사가 간호장이었다. 3명의 한인 간호원과 이익걸·최관실·정창성 등 5명의 의사가 초빙되었다. 제창 병원은 독립운동가의 피난처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특히 제창 병원의 지하실에서 1919년 3·1 운동 당시 독립선언서가 인쇄되었다. 1919년 3월 13일 용정의 만세 운동 당시 중국 군경의 무차별 사격으로 13명의 희생자와 30여 명이 넘는 부상자가 나타났는데 사상자 전원이 제창 병원으로 옮겨져 응급 치료를 받았다. 한편 제창 병원에서는 실비 진료와 더불어 빈곤자에 대해서는 무료 진료를 실시하였다. 또한 순회 의료 진료도 시행하여 오지에 있는 한인 이주촌을 찾아 다니면서 환자들을 치료하였다. 1941년 3월 일제의 외국인 퇴거령으로 캐나다 선교사들이 용정을 떠나게 되면서 제창 병원은 문을 닫게 되었다.

현황

제창 병원은 현재 용정시 인민 정부 건물 뒤 언덕으로 위치가 비정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제창 병원북간도 지역 한인들을 대상으로 실비 진료와 더불어 무료 진료, 순회 진료를 실시하여 한인 사회의 의료 여건 향상에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였다.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피난처로 이용되어 한민족의 독립운동에도 공헌이 큰 병원이다.

참고문헌
  • 중국 조선 민족 력사 발자취 총서 편집 위원회, 『개척』중국 조선 민족 력사 발자취 총서(1), 민족출판사, 1989
  • 주성화 저, 『중국 조선인 이주사』(한국 학술 정보(주), 2007)
관련항목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