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 崔萬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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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 Choi Manhak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러시아 연해주지방 |
시대 | 근대/개항기 |
출생 시기/일시 | 187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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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8년 |
활동 시기/일시 | 1909년 |
활동 시기/일시 | 1911년 |
활동 시기/일시 | 1912년 4월 4일 |
활동 시기/일시 | 1937년 |
출생지 | 러시아 연해주 니콜스크우수리스크시 하연추 마을 |
거주|이주지 | 카자흐스탄 악튜빈스크시 |
활동지 | 러시아 연해주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권업회 의장 |
일제 강점기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최만학은 1878년 연해주 니콜스크우스리스크시 하연추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삼촌인 최재형의 가정에서 자랐으며, 고등보통학교와 이르쿠츠크 교사 강습회를 졸업한 뒤 1909년 니콜라예프스크 소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후 상업과 사업에 종사하며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1908년 블라디보스톡에서 러시아 한인들의 첫 번째 한글 신문인 『해조신문』을 발간하는 데 참여했으며, 1911년 권업회 창립총회에서 실업부장에 선임되었다. 최만학은 1912년 4월 4일에 열린 제1회 총회에서 의장에 선출되는 등 권업회의 핵심 인물로서 활동했다. 최만학은 사업을 통해 번 자금력으로 최재형의 활동을 지원했고, 소비에트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최재형과 함께 러시아에 남았다. 1937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되어 말년에는 카자흐스탄 악튜빈스크시에서 회계원으로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