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슈토베

원어 항목명 Уштобе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카자흐스탄 알마티주 발하쉬지역 우슈토베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상세정보
원어 항목명 Уштобе
원어 주소 Казахстан, Алматинская область Карательский район Уштобе
인구[남/여] 24,759명[2012년]
정의

카자흐스탄 강제 이주 고려인들이 최초로 정착한 알마티주 카라탈 지역의 중심 도시.

개설

알마티와 세미팔라틴스크를 연결하는 철도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카라탈 지역에서 북서쪽 49㎞, 알마티에서 북쪽 400㎞ 거리에 있다. 1961년 6월 도시로 승격되었다. 인구는 1960년대 초반 21,000명을 넘어섰으나 2012년 약 25,000명일 정도로 크게 변동 없이 유지되고 있다. 1937년 극동에서 강제 이주당한 한인들이 가장 먼저 정착한 도시이다.

형성 및 변천

세 개의 산이 모여 이루어진 도시 우슈토베에는 1944년 카자흐스탄 인민위원회의의 법령에 따라 기계 트랙터 보급소[МТС] 기지를 근거로 한 기계 설비 수리 공장이 설립되었다. 1960년대 중반에 유르타 제작소가 건설되었고 현재까지 최신 자동 설비까지 갖춘 공장으로 발전하였다. 우슈토베에는 카자흐스탄에서 유일한 유르타 생산 공장이 남아 있다.

우슈토베는 한인이 극동 지역에서 강제 이주될 당시 최초 기착지로 유명하다. 1937년 10월 9일 한 달을 달려 도착한 20,170가구, 96,256명의 한인들이 우슈토베를 중심으로 크질오르다 등 카자흐스탄 전역으로 분산 배치되었다. 시베리아에서 알마티로 들어오는 기차가 마지막으로 멈추어 선 곳으로 정거장만 있을 뿐인 황량한 대지였다. 한인들은 황무지에 내동댕이쳐졌다.

카자흐스탄에 배치된 한인 중 1,616가구 7,851명이 알마티주에 머물렀다. 이들 중 일부가 철도역에서 북쪽으로 2㎞ 떨어진 머리언덕이라 불리는 바슈토베로 옮겨졌다. 이주민들은 나지막한 언덕을 바람막이 삼아 자리를 정하고 가족 단위의 토굴을 파 추위에 대비하였다.

자연환경

우슈토베는 한인이 처음으로 벼농사를 지은 곳이기도 하다. 우슈토베는 고려인이 벼를 경작한 북방 한계선과 거의 일치한다. 1927년 세미팔라틴스크에 사는 김상덕이 벼 재배에 성공하자 카자흐스탄 토지인민위원회는 최적지 우슈토베에 50만 ㏊의 부지를 선정하고 극동 지역의 한인을 초청해 벼농사를 시작했다. 1928년 7월 4일 초청된 오가이와 안병화는 한인농업협동조합[카즈리스]를 설립해 기계화 영농을 펼쳐 1㏊ 당 4톤의 벼를 생산했다. 1937년 10월 초 강제 이주된 한인이 이듬해 손으로 직접 땅을 일궈 벼농사를 시작했던 지역이 바로 우슈토베였다.

현황

우슈토베에서는 지금도 벼농사를 짓고 있으며, 벼들판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강제 이주 초기에 구측한 토굴은 방치되어 허물어지고 그 위에 갈대가 자라 흔적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지만, 현재 기념비가 설치된 곳을 중심으로 토굴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기념비 뒷 편의 쇠줄 울타리 안에 작게 토굴의 흔적은 남아 있으나, 그 이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참고문헌
  • 『ГААО, ф. 142, оп. 1, д. 53』
  • Кан Г. В., 『История корейцев Казахстана』(Алматы: Гылыл, 1995)
  • 『레닌기치』(1981.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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