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宋章福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 지역 | 일본 오사카부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원어 항목명 | 宋章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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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격 | 노동운동가 |
| 성별 | 남 |
일제 강점기 일본 오사카부에서 활동한 공산주의 계통의 재일 조선인 노동 운동가.
송장복은 1922년 12월 결성된 오사카 조선노동동맹회 초대 위원장에 취임하는 등 오사카 조선인 노동 운동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오사카 조선노동동맹회는 오사카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조선인 노동자 단체로 계급적 강령을 내걸었다. 1925년 2월 도쿄와 오사카의 조선노동동맹회가 중심이 되어 조선인 노동 단체를 규합해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재일노총]이 조직되었다. 7월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에 참가한 오사카의 노동 단체들이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오사카연합회를 결성할 때 설립준비위원을 맡았다. 오사카연합회 안에서 당초 무정부주의 계열의 간부와 대립이 있었지만 영향력을 잃지는 않았다. 오사카연합회 성립을 전후해 창설된 오사카 조토[城東]조선노동동맹회, 고베[神戶]조선노동동맹회, 오사카 쓰루마치[鶴町]조선노동조합 등에서도 간부로 일하였다. 그와 같이 송장복은 오사카, 고베 등에서 조선인 노동자의 조직화를 위해 진력하였다. 또한 1928년 4월 오사카연합회를 일반 노동조합으로 개편한 오사카 조선노동조합의 집행위원장에 취임하였으나, 같은 해 5월 건강이 악화되어 사임하다. 11월에 쇼와[昭和] 천황 즉위식을 맞아 검거되었다. 1929년 4월 오사카 조선노동조합 제3회 대회 때 서부지부 위원으로 정치부를 담당하게 되었고, 신간회 오사카지회에서도 활동하였다. 1929년 말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은 코민테른의 1국1당 원칙에 따라 산하 조직을 일본 공산당 계열의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전협]으로 합류시킨다는 방침을 세웠다. 당시 송장복이 어떤 입장이었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에서는 활동하지 않았다.
그 외에도 송장복은 오사카 조선노동조합 서부지부의 활동가와 함께 대동(大同)소비조합을 설립하는 한편, 1930년 2월 오사카 조선무산자진료소의 운영에 관여하는 등 오사카에 거주하는 재일 조선인들의 생활을 지키고자 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