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원어 항목명 演劇
한자 演劇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일본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원어 항목명 演劇
정의

재일 한인 연극 활동의 흐름과 동향.

해방과 연극 활동 전개

재일 한인의 연극 운동은 식민지 시대로부터 시작되었다. 조선예술좌, 조선학생예술좌 등의 공연은 조선 연극의 선구적 역할을 하였으며, 조국 해방 후 귀국해서 활약하는 여러 인물을 배출하였다. 1946년 일본에 남은 연극인에 의해서 재일본조선예술협회[예협]가 결성되었으나 그다지 성과를 내지 못하였다. 그에 대한 반성으로 전문가의 체험을 살리면서 동포 사회 속에 뿌리 내린 자립적 연극을 목표로 하려는 방향성이 요구되었다. 1948년부터 청년들에 의한 연극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재일본조선인연맹의 청년 조직인 재일본조선민주청년동맹이 일본 도쿄에서 이동 계몽 극단을 편성하였다. 이후 재일본조선민주청년동맹은 지방 본부에서도 연극에 힘을 쏟도록 호소하였다. 각지에서 아마추어 청년들이 곤란을 극복하면서 동포 속에 들어가는 연극 운동을 추진해 호평을 받았다. 1949년 재일본조선인연맹이 일본 정부에 의해 강제 해산을 강요당했을 때 재일 한인 문화인들이 결집해서 동포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연극 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할 것을 결의하고 1950년에 극단 ‘모란봉 극장’을 발족하였다. 1955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가 결성된 후 재일조선중앙예술단 내에 연극부가 설치되어 1962년 초연하였다. 연극부는 1965년 재일조선연극단으로 독립해서 전국 순회 공연을 전개하다가 1974년 해산하였다. 1973년 재일 한인 2세인 쓰카 고헤이[김봉웅(金峰雄)]가 희곡 「아타미 살인 사건」으로 기시타쿠니오상[岸田國士賞]을 수상하였다. 1979년 극단 쓰카 고헤이 사무소를 설립해서 일본 연극계에 폭발적인 ‘쓰카 고헤이 붐’을 일으켰다. 쓰카 고헤이는 본명을 밝히고 한국에서도 공연을 하였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에 걸쳐서 재일본조선유학생동맹이나 재일한국청년동맹 등의 청년·학생들이 조국 통일 운동이나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 호응하는 연극 상연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여 많은 일본인에게 감동을 주었다

재일 한인 2세의 연극 활동

1980년대 무렵부터 재일 한국·조선인 중에 예술 분야에서 활약하는 2세가 점차 늘어났는데 연극 분야에서는 김수진(金守珍)이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김수진은 “‘언더그라운드 연극’을 현대 일본을 대표하는 ‘문화’로 계승해 세계에 이것을 알려 나가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1987년 도쿄에서 극단 신주쿠 양산박[新宿梁山泊]을 설립하였다. 1989년 첫 한국 공연을 한 「천년의 고독」은 테아트로 연극상 등을 수상하였고 독일, 프랑스, 미국 등 해외에도 진출하였다. 또한 2001년 양석일의 소설 『밤을 걸고』를 감독으로서 영화화해서 일본영화감독협회 신인상 등을 수상하였다. 김수진이 이끄는 신주쿠 양산박의 대표 작품인 「백 년, 바람의 동료들」은 재일 한인 100년의 역사와 치열한 삶을 그린 연극으로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꾸준히 공연되고 있다.

신주쿠 양산박 극단의 전속 작가였던 정의신은 탈퇴 후 연극, 영화 각본가로 활약하고 있으며, 「야키니쿠 드래곤」으로 쓰루야 난보쿠[鶴屋南北] 희곡상, 예술선장 문부과학대신상을 수상하였다. 1980년대 후반부터 조선대학교 연극부 출신자 등 조선 학교 졸업생에 의한 연극 활동이 활발해졌다. 1988년 조선대학교 연극부 출신자를 중심으로 ‘모국어에 의한 재일 동포의 삶의 표현’을 최대의 테마로 하는 극단 ‘아랑삶세’[대표 김정호]가 결성되었다. 극단 아랑삶세는 일본의 실정에 맞추어 하나의 작품을 모국어와 일본어의 양쪽 언어로 상연하는 바이링걸 공연을 전개하고 있다. 1993년 오사카 조선고급학교에 다닌 후 일본 대학을 졸업한 김철의(金哲義)가 단장이 되어 오사카를 거점으로 하는 극단 ‘메이’[2002년 ‘May’로 개칭]을 결성하였으며, ‘앨리스페스티벌’의 Alice상, 일본연출가협회 주최 ‘젊은 연출가 콩쿠르 2010’의 최우수상 및 관객상을 수상하였다. 2005년 조선대학교 연극부 출신인 김민수(金民樹)는 오사카에서 재일 3세를 중심으로 하는 바이링걸 극단 ‘달오름’을 창단하여 기획 공연과 아울러 일본 전국의 민족 학교나 일본 학교에서의 공연에도 힘을 쏟고 있다. 이외에도 재일 한인 출신 연극인으로 2016년 제9회 오다시마 유시[小田島雄志] 번역 희곡상을 수상한 재일 한인 3세 홍명화가 있다.

평가와 의의

연극은 오락이면서 창작자 측의 주장을 직접 관객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종합 예술이다. 그 때문에 재일 한인 연극 운동은 오랜 세월 조국 통일이나 재일 한인들의 권리 옹호를 호소하는 계몽적인 작품을 주로 공연해 왔다. 1980년대 무렵부터 재일 한인의 정체성을 선명히 드러내면서 공연 활동을 하는 전문 극단이 등장해 왔다. 또 일본의 연극계나 영화계에서 배우로서 활약하는 재일 한인도 증가하고 있다. 재일 한인의 문화 예술 활동은 향후 더욱 발전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 『재일코리안사전』(정희선 외 옮김, 선인, 2012)
  • 정진세, 「동시대 재일 한인 연극 연구: 경계인의 형상화를 중심으로」(한국예술종합학교 석사 학위 논문, 2013)
  • 『한겨레』(2015. 9. 14, 2013. 3. 7)
  • 『연합뉴스』(2016. 6. 21)
  • 『오마이뉴스』(2016. 8. 15)
  • 『월드코리안뉴스』(2017.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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