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 역사/근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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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미국 하와이주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출생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황해도 옹진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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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이주지 | 미국 하와이주 |
활동지 | 미국 하와이주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여 |
대표 경력 | 대한부인구제회 창단 회원 |
일제 강점기 미국 하와이주로 이주하여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
지영희는 황해도 옹진에서 태어났으며, 먼저 하와이로 이주한 남편을 뒤따라 1912년 미국 하와이로 이주하였다. 영자 신문 『애드버타이저』에 의하면, 1919년 3·1 독립운동 소식이 알려지자, 하와이 각 지방의 여성 대표 41명이 3월 15일 호놀룰루 국민회 총회관에 모여 조국 독립운동에 모든 역량을 기울이기로 하고 대한부인구제회를 결성하였다. 각 지방 여성 대표들은 이름을 대한적십자[Korean Red Cross Society]로 정하려고 하였으나, 대한제국이 자주 독립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대한부인구제회로 단체명을 정하였다. 지영희는 88명의 창단 회원 중 한 명으로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첫 사업은 대한독립선언서[The Proclamation of Korea] 관련 사업이었는데, 3·1 운동 중 사상당한 애국지사 가족에게 1,500달러를 보내는 것이었다. 1920년 11월 상해 임시 정부를 통해 만주에 있던 대한독립군에 500달러를 보냈고, 1921년 서북간도에서 참상을 당한 동포들에게도 상해 임시 정부를 통해 500달러를 보냈다. 여러 가지 기금 모집 행사를 통하여 독립 자금과 재난 보조금을 만들어 필요한 곳에 보냈을 뿐만 아니라, 호놀룰루에서 행해지는 행진과 축제 등에 언제나 한인을 대표하는 단체로 한복을 입고 태극기를 들고 적극적으로 참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