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태권도의 어제와 오늘

분야 문화·교육/교육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파라과이  과테말라  에콰도르  엘살바도르  콜롬비아  브라질  멕시코  베네수엘라  트리니다드 토바고  페루  칠레  온두라스  니카라과  파나마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원어 주소 Paraguay|Guatemala|Ecuador|El Salvador|Colombia|Brasil|México|Venezuela|Trinidad and Tobago|Perú|Honduras|Nicaragua|Panamá
영문 주소 Paraguay|Guatemala|Ecuador|El Salvador|Colombia|Brazil|Mexico|Venezuela|Trinidad and Tobago|Peru|Honduras|Nicaragua|Panama
정의

중남미 지역에 한국의 국기인 태권도가 보급되기 시작한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보급 현황과 실태.

개설

남미 지역의 태권도 역사는 1960년대에 소수의 한국 태권도 사범들이 파라과이로 이민을 가면서 시작되었다. 이들이 남미에서 태권도의 개척자가 된 것이다. 이후 대통령 경호원으로 활동하면서 태권도 보급이 널리 이루어졌다. 1962년 김용덕이 유학생 신분으로 과테말라에서 태권도를 가르쳤으며, 1964년에는 이범재가 에콰도르에 진출하였고, 1966년 최병호가 엘살바도르, 1967년 이경덕이 콜롬비아, 이우재와 이희섭이 브라질에 진출하였다. 1960년대 초반 황세진이 멕시코에 갔고, 문대원이 1969년에 멕시코에 본격적으로 태권도를 보급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1970년 김영군이 파라과이, 이종구와 김흥기·김홍기 형제가 베네수엘라, 정진영이 트리니다드 토바고, 이기형이 페루 등에 진출하여 중남미 전역에서 태권도 보급이 시작되었다.

1980년대는 칠레 정부의 군대와 경찰에서 태권도의 필요성을 인식하여 한국 태권도 사범을 초청하였는데, 조남수·김승환·김한노 등이 이때 파견되었다. 1990년대는 브라질에 오창훈이 태권도 시범단을 활성화하는 데 공헌하였다. 2000년대에는 김요준이 브라질의 상파울루태권도협회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외교통상부 국제협력단[KOICA]에서 파라과이에 태권도를 할 수 있는 봉사단원을 파견하여 사업을 확대하고자 하였다. 국기원에서는 태권도 보급을 위해 해외로 사범들을 파견하였다. 2014년 멕시코에 한국문화원이 설립되면서 김준석을 파견하여 태권도를 지도하게 하였다. 2012년 주온두라스 대한민국 대사관에 김호석을 행정원 신분으로 파견하여 태권도를 보급하게 하였다. 2013년 니카라과 진광운, 베네수엘라 김성훈, 2014년 파나마 이영환, 2016년 볼리비아 박준석, 2018년 브라질 임명철, 2021년 페루 전영기, 과테말라 김진수, 칠레 서원호, 콜롬비아 한상묵, 엘살바도르 두현종 등을 파견하였다.

태권도의 세계화 과정

1961년 9월 16일 대한태수도협회가 창립되어 1963년 2월 23일 대한체육회에 가맹단체로 승인을 받았고, 그해 전국체육대회의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1959년 3월 12일 21명으로 구성된 국군 태권도시범단이 베트남 응오딘지엠(Ngo Dinh Diem) 대통령의 초청으로 베트남에서 태권도 시범을 선보였다. 1963년 대한태수도협회의 태권도친선사절단 선수 15명이 일본을 순방하여 시범을 보였고, 1965년 국무회의에서 18개국을 순회하며 태권도 시범을 보일 대한태권도협회 태권도친선사절단 파견을 의결하였다.

제3대 대한태수도협회 회장에 취임한 최홍희가 1965년 8월 5일 ‘태수도’에서 ‘태권도’로 명칭을 공식 개정하였다. 1973년 서울에서 제1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를 개최하는 동시에 세계태권도연맹[WTF]을 창설하였다. 세계태권도연맹은 1974년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GAISF]에 가입했으며, 1980년 7월 15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태권도를 올림픽경기 종목으로 승인하였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시범 종목으로 태권도를 채택하였고, 2000년 호주 시드니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서울 올림픽 대회에는 32개국에서 남자 120명과 16개국에서 여자 63명의 선수가 출전하여 시범 경기 종목으로 대회를 벌였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회에서 태권도는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어, 올림픽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국기원에서는 2009년부터 세계 각국으로 태권도 사범을 파견하는 ‘태권도사범 해외파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11명으로 시작해 2024년 기준 아시아 19개국, 유럽 13개국, 북미와 중남미 11개국, 아프리카 7개국, 오세아니아 2개국 등 총 52개국에 52명의 태권도 사범이 파견되어 있다.

중남미 지역 태권도의 보급 형식

1959년 베트남을 시작으로 본격화되기 시작한 해외 국군 태권도 시범단은 이후 급속한 해외 진출의 계기가 되었다. 1966년 3월 22일 국제태권도연맹[International Taekwondo Federation, ITF]이 조직되었다. 1973년 국기원 주도로 세계태권도연맹[World Taekwondo Federation, WTF]이 창설되었다. 민간 차원에서는 미국 유학생들인 유병철, 이준구[Jhooon Lee], 황세진[Jack Hwang], 조시학[Henry Cho], 전인문, 이행웅, 김기황, 손덕성, 문대원 등이 1950~1960년대 태권도 도장을 개관하게 되었다.

1957년 미국 샌안토니오에서 태권도 클럽을 개설한 이준구는 1962년 6월 워싱턴에 태권도장을 개설하면서 북미에서 본격적인 태권도의 보급에 앞장섰다. 중남미 지역의 태권도는 태권도인 개인이 진출하는 경우와 대한태권도협회 추천으로 파견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 이후에는 국제태권도연맹 파견 및 중남미의 무술협회에서 초청하는 형식으로 태권도가 보급되었다.

중남미 국가에 태권도가 보급되는 형태는 이민, 초청, 파견 등으로 나타났다. 첫 번째 이민 형태는 파라과이의 이우복, 아르헨티나의 김한창, 브라질의 조상민이 대표적이다. 이우복은 1964년 11월 가족과 함께 파라과이로 가서 1968년 도장을 개설한 후, 태권도를 지도하고 보급하였다. 김한창은 1968년 2월부터 아르헨티나에 태권도를 보급하고 기술부위원장을 역임하였다. 조상민은 1970년 가족과 함께 브라질로 가서 그곳에 태권도를 처음으로 보급하였다.

두 번째는 초청 형태이다. 중남미에 이민을 가서 정착한 태권도 지도자들이, 국내의 태권도 사범들을 초청하였다. 브라질의 조상민은 1971년 권금준·강건모·김상인·신광수를 태권도 지도자로 초청하였다. 브라질에 초청된 태권도인들은 현지에 잘 적응하여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면서 국내의 태권도 지도자들을 초청하기도 하였다. 1976년에는 김용민이 브라질 무술연맹의 초청으로 가서, 1987년 브라질태권도협회의 설립을 주도하며 22년간 회장을 역임하였다. 콜롬비아에서는 1967년 콜롬비아 아메리카대학 특수체육 교수로 이경득을 초청하여 태권도를 강의하게 하였고, 1970년부터 1973년까지 콜롬비아 육군사관학교와 보안성의 태권도 사업도 맡겼다. 멕시코의 경우 1968년 미국 유학생 문대원을 초청하여 10일간 멕시코에서 태권도를 지도한 것이 계기가 되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칠레는 1985년 군부와 경찰에서 태권도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조산수·김승환·김환노 등 태권도 선수 출신자를 초청하였다.

세 번째는 파견 형식이다. 대한태권도협회가 1975년 2월 브라질에 변종찬을 파견한 이후, 같은 해 박봉서를 파견하여 브라질에 태권도를 보급시켰다. 우리 정부 차원에서도 1979년 페루에 정의황을 최초로 파견하였는데, 정의황을 파견한 것은 페루 수상의 요청도 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한국의 외교 역량을 강화할 목적도 있었다. 중남미 국가에 태권도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중남미 국가에서 파견을 요청함에 따라 외교통상부 국제협력단에서도 봉사단원으로 태권도 지도자를 파견하였다. 2000년 파라과이에 협력 요원 1명 파견을 시작으로, 2004년부터 2007년까지 태권도 인원을 파견하였다.

중남미 지역에서 태권도의 보급 과정

1960년대 중남미의 태권도 보급은 파라과이로 이민한 이우복과 1965년에 온 명덕선[태권도 4단]에 의해 비롯되었다. 이들은 중남미 최초로 진출한 태권도 지도자였다. 파라과이에서 태권도의 지도자로 인정받아 대통령 경호원으로 활동하며 태권도가 보급되었다. 1967년 김한창과 이경득이 각각 아르헨티나와 콜롬비아로 갔고, 1968년 임정도가 브라질로, 1969년 문대원이 멕시코에 진출하게 되었다. 당시 남미에서는 유도와 가라테가 유행을 하면서 보급되고 있었던 때라, 유도 도장이나 가라테 도장을 찾아다니며 태권도 시범을 보이는 데서 태권도 보급이 시작되었다. 브라질의 임정도는 개인 자격으로 이민을 가 브라질 농업대학에서 태권도를 지도했으나 본격적인 지도자라기보다는 개인 운동이었다. 이범재는 1970년 칠레 국제협력단에 있다가 에콰도르로 진출하였다.

중남미 지역에서 태권도의 보급은 도장을 개설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군인과 경찰들에게 무술을 교육하는 것으로 출발하였다. 그 계기는 1960년대 군인체육대회[CISM]에서 태권도가 상당한 주목을 받으면서, 남미 일부 국가에서 한국인 태권도 지도자를 요청하면서 비롯되었다. 특히 브라질의 경우에는 치안국 경찰사관학교, 정보부, 각 대학의 강사로 태권도 지도자들이 진출하였다. 1969년 대한체육회의 보도 자료에 의하면 콜롬비아, 브라질,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볼리비아에 태권도 사범 5명, 유도 사범 4명이 진출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중미 지역의 멕시코나 파라과이 등에 진출한 태권도 사범에 대한 집계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 이유는 멕시코나 파라과이의 태권도 사범들은 이민으로 갔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태권도 지도자라고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볼리비아는 1971년 11월 한국과 문화협정이 체결되면서 김휘영[태권도 5단], 김만복[태권도 8단], 탁보선[태권도 3단] 등이 대통령을 경호하며 한편으로 군인, 경찰 등에게 태권도를 가르쳤다. 1986년 8월 남미경기연맹[ODESUR, 회장 안토니오 로드리게스, 아르헨티나]이 태권도를 정식 종목으로 채택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7월 칠레 산티아고에서 개최된 대회에서 남미 13개국이 참가하였는데, 태권도 경기가 개최되었다. 이를 계기로 남미 지역에 태권도 보급이 확산되었다.

브라질의 태권도 보급 과정

브라질에 한국의 태권도가 보급된 것은 1968년 임정도가 브라질 농업대학에서 수련을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임정도는 1968년 당시 태권도 5단으로 브라질 북부에 있는 바이아주(Bahia州)의 주도 살바도르시에 있는 크루스 다스 알마스(Cruz das Almas) 대학에서 태권도를 가르쳤다. 임정도가 있던 지역은 브라질의 외곽으로 태권도의 보급에는 한계가 있었다. 브라질에서 태권도 보급에 크게 기여한 인물은 조상민이다. 조상민은 ‘브라질 태권도 아버지’라고 불리며, 1980년대 초까지 태권도의 보급에 힘을 쏟았다. 그는 1970년 ‘아카데미아 리베르다지(Acamemia Liberdade)’라는 이름의 태권도 도장을 최초로 개설하였다. 1971년 이희섭을 비롯해 김만웅·오주열·정재규 등과 함께 브라질연방체육회로부터 태권도를 체육 종목으로 인정을 받았고, 1974년 브라질복싱연맹 산하에 태권부를 설립하였다.

1970년대 브라질의 태권도 지도자들은 당시 캐나다에 있는 최홍희의 국제태권도연맹에 소속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새로 창립된 세계태권도연맹의 기본형이 서로 달라 한국 태권도가 다른 것처럼 보였고, 이로 인해 현지인들의 태권도에 대한 이해에 혼란을 주기도 하였다. 1970년 6월 조상민이 브라질에 갔을 당시에는 일본 가라테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조상민은 한국 태권도가 기술적으로 다양하고 우수하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어디든지 찾아가서 시범을 보였다. 가라테를 배우던 현지인들이 태권도에 관심을 보이며 배우기 시작하였다.

조상민은 1971년 권금준, 이우재, 강건모, 김상인, 신광수를 초청하였고, 김정렬이 이민을 왔다. 권금준은 1971년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Kwon’ 태권도클럽을 개설하였고, 초기 1년간 조상민과 함께 태권도 보급을 주도하였다. 권금준의 도장 훈련 광경이 TV 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1973년 태권도가 브라질 체육회의 정식 경기종목으로 채택되어 1973년 7월 제1회 전브라질 태권도선수권대회가 열렸다. 권금준은 1975년 이계준을 초청하였다. 방건모는 브라질 유니마르(UNIMAR)에서 체육교육학을 전공하고, 마릴리아(Marilia)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였고, 1971년 ‘방 태권도 클럽(Bang Taekwondo Club)’을 설립하였다. 이우재는 1972년 3월 브라질에 와서 리오자네이루주에 태권도 도장을 개설하였고, 태권도 시범단을 조직하여 브라질 전역을 돌며 태권도를 소개하였다. 특히 각종 학교, TV, 군과 경찰 등을 지도하였으며, 『DO』라는 무술 잡지의 발행인과 『Aprenda Taekwondo』라는 교본도 발행하였다.

김정민은 1971년 브라질 바이아주에 정착하였다가, 1973년 리우데자네이루로 옮겨서 활동하였다. 1982~1991년 리오주 태권도협회 회장을 맡았으며, 1991~2008년 브라질태권도협회 부회장, 2009년 브라질태권도협회 회장이 되었다. 1974년 상파울루에는 4개의 태권도 도장이 있었고, 리우데자네이루에 이우재 도장, 마릴리아에는 방건모의 도장이 있었다. 한국인 태권도 관장들은 자신의 도장을 운영하는 것 외에 브라질 치안국 경찰사관학교, 정부, 대학교 등에서 태권도를 지도하였다. 그래서 상파울루 정보부와 경찰에는 이들 한국인 사범들의 제자들이 많았고, 한인들이 곤란한 처지에 빠지면 편의를 봐주기도 하였다.

파라과이에서 태권도 보급

파라과이에 태권도를 보급한 사람은 이우복이다. 1964년 11월에 들어가, 1968년 40여 명의 관원을 가진 태권도 도장을 개관하였다. 이우복의 태권도 도장은 중남미 최초의 도장으로, 태권도 시범을 구경하려는 시민들이 법석댄다고 파라과이의 ABC 신문이 대대적으로 보도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1967년 파라과이 체육회는 무료로 태권도를 가르치는 이우복에게 월 200달러를 보조하였다[당시 생활비가 월 60달러 정도 들어서 140달러를 저축할 수 있었음].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 파라과이 대통령은 이우복에게 경호원들의 특별훈련을 부탁하였고, 국방장관은 육군사관학교의 태권도 교관으로 초청하기도 하였다. 1965년에는 명덕선이 파라과이에 들어왔는데, 아순시온시 경기청의 태권도 교관이 되었다. 여러 학교를 돌아다니며 태권도 격파 시범을 보였고, 1967년에는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 대통령의 경호원이 되었다.

아르헨티나에서 태권도 보급

아르헨티나에는 1967년 김한창[태권도 4단], 최남성[태권도 5단], 정광석[태권도 2단]이 이민을 와서 태권도를 보급하게 되었다. 김한창은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에서 ‘한국 가라테[Korean Karate]’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였고, 1968년 2월부터 실제로 태권도를 보급하게 되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손만 사용하는 가라테를 보다가, 손과 발을 함께 사용하는 태권도에 흥미를 느끼고 배우기 시작하였다. 1974년 중국 무술영화가 유행하면서 부에노스아이에스에 한국인 태권도 사범 8명, 전국에 20여 개의 태권도 도장이 들어섰다. 김한창은 아르헨티나 태권도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최남성은 이민을 오기 전에 연무관에서 수련을 하였고, 경찰 등을 지도하다가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왔다. 아르헨티나에서는 태권도를 배우는 수련생들에게 인성을 강조했고, 작고 강력한 기술을 지니고 기초를 중시하는 지도자였다. 정광덕은 손 격파 기술이 좋았고, 이종서는 무덕관 출신으로 다양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멕시코에서 태권도의 전파

미국에서 유학하고 있던 문대원이 1968년 멕시코 카스텔론의 초청을 받아 10일간 멕시코에서 태권도를 지도하게 되었다. 이후 멕시코 무술협회의 요청을 받고 1969년 5월 멕시코에서 태권도를 보급하게 되었다. 문대원은 멕시코시티 중심가 14층 건물의 2층에 무덕관 도장을 설립하고 태권도를 지도하였다. 멕시코에서 태권도를 보급한 지 5년 만에 2,500여 명의 수련생을 확보하였고, 이를 토대로 ‘문대원컵태권도대회’를 개최하였다. 1973년 한국에서 열린 제1회 세계선수권대회에 제자들을 참가시켜 종합 3위를 차지하였다.

문대원은 멕시코 전역에 태권도 지관을 20여 개 두었다. 문대원은 1980년 멕시코시티에서만 1만여 명의 제자와 250여 명의 유단자를 배출하였고, 태권도 강의와 시범 활동을 하였다. 그러면서 문대원 명의의 39개 도장을 다니며 지도했고, TV에 출연해 해설과 시범을 보였다. 멕시코에서 많은 제자를 양성하여 ‘문왕국’으로 불렸다. 멕시코는 1970년대 문대원에 의해 태권도가 전파된 이후 4,000여 개 도장이 전국에 분포되어 400만 명 이상이 태권도를 수련하였다.

멕시코는 정부와 협회의 지속적인 지원과 선수 발굴을 위한 시스템, 경기 선수들의 높은 경쟁력으로 태권도의 경기화에도 많은 발전을 이루고 있다. 멕시코태권도연맹[Federación Mexicana de Taekwondo, A.C]은 1976년 4월 30일 정식으로 구성되었다. 멕시코에서는 초창기 문대원의 노력에 이어 2019년 현재까지 겨루기 국가대표 감독으로 방영인, 방영선과 품새 국가대표 감독으로 이강영이 지도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인 태권도 지도자들을 선호한다. 멕시코 태권도의 경기력은 국제태권도대회의 양 축을 이루고 있는 겨루기와 품새 종목 모두에서 세계 수준으로 발돋움하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2개의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기예르모 페레스와 마리아 에스피노사는 멕시코의 영웅으로 불리게 되고 태권도 열풍에 빠지는 계기가 되었다.

중남미 기타 국가의 태권도 보급

코스타리카는 1969년 초청 장학생 및 태권도 사범으로 유학을 간 양원건에 의해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양원건은 코스타리카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태권도를 보급하면서 제2회 세계대회에 3명의 선수를 파견하였다. 베네수엘라는 김홍기가 1971년 태권도 도장을 개설하고, 주립대학교와 경찰, 각종 학교에 태권도를 보급하여 지도자를 양성하였다. 콜롬비아는 1967년 이경득이 보고타 아메리카대학의 특수체육 교수로 초청되어 태권도를 보급하였다. 이경득은 1967년부터 1970년까지 아메리카대학에서 태권도 동양학을 강의하였고, 1970부터 1973년까지 콜롬비아 육군사관학교, 보안성에서 태권도를 지도하였다. 에콰도르에는 1970년 이범재가 과야킬에 정착하였고, 1971년 4개의 도장을 설립하였다. 볼리비아에는 1970년대 초 참사관이었던 김만복이 태권도를 무료로 지도하면서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1971년 한국과 볼리비아의 문화협정에 따라 김휘영·김만복·탁보선 등이 진출하여 대통령경호실과 경찰, 특수군 부대까지 태권도를 보급하였다.

1970~1980년대 중남미의 태권도 보급 실태

브라질태권도협회는 1975년 세계태권도연맹에 가입하였고, 1976년 팬암태권도연맹에 가입하였다. 브라질태권도협회는 1973년 1월 13일 제1회 리우데자네이루 태권도대회를 개최하였다. 이 대회에는 이우재가 경영하는 4개의 도장과 이희섭이 운영하는 1개 도장, 그 외 일본인 가라테 도장도 참가하였다. 이 대회를 계기로 브라질에서 가라테보다 태권도가 더 많이 보급되게 되었다. 1975년 2월 한국태권도협회에서 변종찬을 브라질에 1년간 파견하였다. 1976년 이우재의 초청으로 김용민이 브라질에 오게 되었다. 김용민은 브라질 TV 어린이 프로그램에 나오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후 그를 주인공으로 하는 『메스트리 킴(Mestre Kim)』이라는 만화책이 10권까지 발행되었다.

1977년 이태보, 홍성장, 임창선이 브라질에 태권도 사범으로 진출하였다. 1978년 조상민의 초청으로 김요준이 브라질에서 태권도를 지도하게 되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본격적으로 한국에서 태권도 지도자들이 브라질에 진출하면서 브라질 태권도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1980년 이신화가 김용민의 초청으로 상파울루 연방 경찰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기 시작하였고, 강홍순은 이우재의 초청으로 1981년 브라질에서 태권도를 보급하였다. 1983년 이백수가 왔고, 재브라질 상파울루 체육회장과 대한체육회 브라질지부장을 맡기도 하였다. 방건모는 1986년 「브라질에서의 태권도, 연구 입문(TAEKWONDO NO BRASIL UM ESUDO INTRODUTORIO)」이라는 주제로 학위를 받았다. 브라질에서 1987년 4월 6일 브라질태권도협회가 정식으로 창립되고, 브라질체육회에 태권도가 정식 가맹하게 되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1977년 구영채가 와서 프라타시 태권도장을 운영하였으며, 1978년 아르헨티나협회를 결성하여 기술감독을 맡았다. 페루에서는 1975년 서정희가 태권도를 보급하다가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갔고, 1977년 박병오가 육군사관학교와 수사경찰국, 외무성 요원들을 중심으로 태권도를 지도하였다. 칠레에서는 1977년 김영수가 산티아고에 태권도 도장을 열면서, 전영근·양용택·김지용 등과 칠레의 군대와 칠레인들에게 태권도를 지도하였다. 1985년 칠레의 군과 경찰에서는 태권도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조남수·김승환·김한노를 초청하였다. 1986년 칠레태권도연맹이 창설되고 조남수가 칠레팀 대표를 맡아 각종 국제대회에 참가하였다.

2000년 이후 태권도 보급의 현황

1973년 에콰도르와 멕시코가 세계태권도연맹에 가입하였고, 브라질은 1975년, 아르헨티나·콜롬비아·베네수엘라는 1976년에 가입하였다. 2010년 11월 기준으로 중남미 40여 개국이 세계태권도연맹에 가입되어 있다. 송봉경이 온두라스 육군의 초청으로 태권도를 가르쳤으며, 온두라스에서는 태권도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진다. 포르피리오 로보 소사(Porfirio Lobo Sosa) 온두라스 대통령은 2011년 2월 한국 방문 당시 연설에서 “저는 송봉경 사범의 가르침을 통해 규율과 용기, 그리고 인내심을 배웠습니다.”라고 하면서, 또 “저는 온두라스 청소년들에게 태권도를 수련하면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될 것이라고 강조해 왔습니다”라고 덧붙였다.

태권도진흥재단에서는 2022년 11월 니카라과 교육부와 업무협약을 맺고 국공립 초등학교 2곳에서 태권도를 정규 수업으로 시작하였고, 2023년도부터는 11개 학교로 확대된다.

2023년 10월 13일부터 15일까지 ‘제15회 아메리칸컵 및 월드 태권도 챔피언십’이 브라질 아루자 PL 체육관에서 열렸다. 브라질태권도리그연맹이 주최하고 세계올림픽태권도연맹[이사장 문대성]이 주관한 이 대회에는 브라질 전 지역과 칠레, 파라과이, 볼리비아, 콜롬비아 등 남미 국가를 대표하는 태권도인 2,000여 명이 참가하였다.

참고문헌
  • 『태권도 해외 보급(진출) 역사 연구』-미주지역 결과보고서(태권도진흥재단, 2010)
  • 『국기원 50년사』(국기원, 2022)
  • 최광근, 「태권도 세계화 전개 과정에서 본 태권도시범史」(한국체육대학교 박사논문, 2011)
  • 전난희·김옥현, 「해외 태권도 지도자들이 인식하는 태권도의 세계화」(『국기원태권도연구』10-4, 국기원 태권도연구소, 2019)
  • 정지철, 「멕시코 태권도의 발전요인 탐색」(명지대학교 사회교육대학원 석사논문, 2019)
  • 박종범·홍성걸, 「한류의 원조: 태권도의 세계화와 문화영토 확장」(『문화영토연구』2-1, 재단법인 문화영토연구원, 2021)
  • 정호원, 「세계화를 위한 세계태권도연수원(WTA)의 정책방안」(『대한무도학회지』25-1, 대한무도학회, 2023)
  • 「중남미에 불고 있는 태권도 열풍」(국제문화홍보정책실, 2013. 3. 4.)
  • 「멕시코 문대원 관장 ‘멕시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어워드’ 수상」(『한국경제』, 2016. 7. 8.)
  • 「“중남미서 태권도 정규과목 채택… 앞으로 더 확대시킬 것”」(『조선일보』, 2022. 12. 21.)
  • 「남미 태권도인 2천명 한자리에…‘아메리칸컵 및 월드 태권도 챔피언십’」(『재외동포신문』, 2023.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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