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 지역 | 멕시코 쿠바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원어 주소 | México|Cuba |
|---|---|
| 영문 주소 | Mexico|Cuba |
멕시코와 쿠바로 이민을 간 한인들이 한국어 발음대로 부르거나 스페인어식으로 변화시켜 사용한 한국 성씨들.
1905년(고종 42) 멕시코 유카탄주로 이민한 한인들은, 에네켄 농장에서 노동을 하면서 자신의 성씨와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지만 에네켄 농장에서 농장 관리원들은 한인들의 성씨와 이름을 자신들이 부르기 쉽게 바꾸어 불렀다. 그리고 출생신고나 혹은 외국인 등록을 할 때에는 한국 성씨를 스페인어식으로 약간 변형하여 현지 관청에 등록하였다. 그래서 김은 Kim, Kin, King 등으로 바뀌었고 이는 Lee, Li, Hi, Diaz 등으로 변화하였다. 멕시코에서 쿠바로 재이민을 간 한인들도 동일하게 한국 성씨를 스페인어식으로 바꾸어 사용하였다. 멕시코와 쿠바 한인들의 성씨 변화를, 자료를 통해서 상세하게 정리하였다.
한국인들은 태어나자마자 아버지의 성에 이름을 지어 붙인다. 그것은 멕시코로 이민을 왔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멕시코에서는 자신의 고유한 성씨로 살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호세 산체스의 『교포역설(僑胞歷說)』에는 “본인이 원하거나 또는 어떤 알려진 또는 미지의 상황으로 부득이 다른 이름으로 바꿔야 할 경우가 있다”고 하였다. 멕시코로 이민을 간 초기 한인들은 타국의 언어로 이름을 바꾸는 경우 본인의 이름이라 할지라도 그 개성적 요소가 사라져 버린다고 믿었다. 왜냐하면 그때부터는 바뀐 언어로 발음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이름은 성씨가 있고, 이름이 있다. 이것이 합쳐져서 성명(姓名)이 된다. 성씨는 태어날 때부터 고유한 것으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는 것이지만, 이름은 부모가 지어 준다. 한국의 성명은 멕시코의 성명과는 다르다.
멕시코로 이민을 간 한인들이 언제부터 무슨 이유로, 어떻게 해서 스페인어 이름을 사용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교포역설』에는 “아마도 강제노동 계약기간 동안에 그런 이름을 얻게 된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볼 뿐이다.”라고 하였다. 에네켄 농장에서 계약 노동을 할 당시 농장의 대리인들이 자신들이 부르기 쉽게 제멋대로 한인들의 이름을 갖다 붙였던 것이다. 이때부터 그 이름이 굳어져 뒤에까지 계속 사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멕시코인의 국적은 속지주의(屬地主義)를 채택하고 있다. 한인들끼리 결혼을 하여 자식이 태어난다면, 한국 이름으로 호적 등록을 해도 무방하다. 그렇지만 한인들은 멕시코의 호적 등록 제도를 잘 알지 못하여 출생신고를 제때 하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에네켄 농장에서 강제 노역을 할 당시에는 농장 밖으로 나가는 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태어나도 출생신고를 할 수가 없었다. 한인들은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는 것 자체를 몰랐다. 그렇지만 한인 2세부터는 국적 취득과 신분 증명이 필요하기 때문에 필요한 수속 절차를 밟아야만 했다. 예전의 멕시코 헌법에는 “멕시코 태생으로서 외국인을 부모로 둔 자녀는 성인이 되어도 외국인으로 간주함”이라고 되어 있었다. 그러나 1934~1940년 사이에 헌법이 개정되면서, “외국인을 부모로 둔 자녀라도 멕시코에서 태어나면 속지주의에 따라 멕시코인임”이라고 개정되었다.
멕시코나 쿠바의 한인들 사이에 결혼을 할 때는 한국 성씨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한인 2세들이 출생신고를 할 경우 한국인 성씨로 등록하기보다는, 본인의 고유한 이름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도록 고려하면서, 스페인어 발음에 가깝게 성씨를 바꾸었다. 유카탄에 온 한인들은 기꺼이 성씨와 이름을 바꾸었다. 그들은 이름뿐 아니라 성씨까지도 한국과 전혀 딴판으로 개명하였다. 그렇지만 한인들 사이에서는 한국 이름으로 불렸고, 현지 멕시코인과의 관계에서는 스페인어로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현지인 여성들과 결혼하여 새로운 자녀들이 태어날 경우에는 한국의 성씨로는 살기가 쉽지 않았기에 멕시코인이나 마야인 여성과 결혼을 하여 태어난 자녀들은 스페인어 성씨를 채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한인 이민자들 가운데에는 사업상 이유 때문에 멕시코 국적을 취득하는 경우도 많았다. 멕시코 국적에 적합하면서, 한국의 고유한 성씨를 나타낼 수 있는 성씨로 등록을 해야만 했다. 호세 산체스의 『교포역설』에는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사례를 들고 있다.
최(崔): Che, 산체스(Sanchez)
서(徐): Soo, 소우르(Sour), 소사(Sosa), 사우시(Sausi)
고(高): Koo, 꼬로나(Corona)
김(金): Kim, 낌(Quim), 낑(King)
‘낌(Quim)’이나 ‘낑(King)’은 멕시코 관공서의 공문서 작성 시 ‘김(Kim)’이라는 발음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잘못 기재한 것이다. ‘이시(Hisi)’는 ‘이씨(李氏)’이고 ‘깡가(Kanga)’는 ‘강가(姜哥)’를 말하는 것이다. 한국식 성도 아니고, 스페인 성도 아닌 괴상한 성씨가 탄생한 것이다.
한인들은 에네켄 농장 시절부터 스페인어 이름을 사용하였다. 한인 지도자로 잘 알려진 김기창은 마누엘 김(Manuel Kim), 이종오는 마누엘 리(Manuel Lee), 유진태는 호세 유(José Yu), 김익주는 호아킨 김(Joaquin Kim), 박창운은 라몬 팩(Ramon Pack), 김대선은 호세 김(José Kim), 이학서는 루치아노 리(Luciano Lee), 박두현은 알베르토 팩(Alberto Pack), 김덕순은 페드로 김(Pedro Kim), 고희민은 에밀리오 코로나(Emilio Corona), 공인덕은 시몬 콩(Simon Kong), 이순여는 리카르도 리(Ricardo Lee), 황보영주는 후안 황보(Juan Whangpo) 등의 스페인어 이름을 사용하였다. 이들은 김, 리, 박 등 자신의 성씨를 스페인어로 표기하였다. 그런데 한인 2세들이 태어나면 출생신고를 해야만 했기 때문에 스페인어식 성씨로 바꾸었다. 출생신고 과정에서 잘못 표기한 것인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스페인어로 보이려고 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어쨌든 멕시코로 이민을 간 한인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성씨만으로는 생활이 어렵기 때문에, 스페인어로 된 새로운 성씨로 바꾸었다.
김은 킹(King) 혹은 킨(Kin), 양은 야네스(Llanes), 고는 코로나(Corona), 강은 쿠앙(Cuang), 이는 리아스(Lias), 리사마(Lizama), 이(Y) 또는 디아스(Diaz) 등으로 바뀌었다. 『교포역설』의 저자 최병덕의 스페인어 이름은 호세 산체스 팍(José Sánchez Pac)이다. ‘최’가 ‘산체스’가 된 것이다.
멕시코 한인들의 스페인어 성씨와 이름에 대해서 살펴보자. 이 자료는 1926년 탐피코 지방의 외국인 등록대장과 1954년 3월 4일 자 코아트사코알코스의 외국인 등록대장이다. 이 외국인 등록대장에는 한국인뿐만 아니라, 중국인·일본인 등 많은 외국인 이름이 포함되어 있다. 그 가운데 한인 명단은 몇 명이 되지 않지만, 멕시코 지역의 한인들의 이름과 성씨 변화를 알 수가 있다[국가보훈처·독립기념관, 『국외독립운동사적지 실태조사보고서』4, 2004].
탐피코 외국인 등록대장: Alfonso Lee[29세 남자], Alfonso Choy[49세 남자], Antonio Pak[52세 남자]
코아트사코알코스 외국인 등록대장: Samuel King Li, Manuel Kin Li, Antonio Han Cozi, Esperanza Yun de Kong
위와 같이, ‘이’는 ‘Lee’ 혹은 ‘Li’, ‘박’은 ‘Pak’, ‘최’는 ‘Choy’, ‘윤’은 ‘Yun’, ‘공’은 ‘Kong’으로 표기하였다. 대부분 자신의 성씨를 그대로 표기하여 사용하였다. 그렇지만 이름은 스페인식으로 바꾸었다.
그러면 1921년 3월 쿠바로 재이민을 간 한인들도 멕시코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성씨와 이름을 스페인어로 바꾸었는가에 대해서 살펴보자.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대한인국민회 마탄사스지방회]에서 마탄사스 정부에 보고한 1921년도, 1923년도, 1924년도 지방회 임원 명단을 소개한다. 이 명단은 마탄사스 문서보관소에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다음은 1921년도, 1924년도, 1925년도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의 임원 명단으로 모두 스페인어로 기재되어 있다[국가보훈처·독립기념관, 『국외독립운동사적지 실태조사보고서』5, 1921년도[447쪽], 1923년도[453쪽], 1924년도[458쪽], 1925년도[461쪽], 1926년도[465쪽]].
[1921년도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임원 명단]
회장[Presidente]: 서문경[Pedro Soea]
부회장[Vice-Presidente]: 이희택[Miguel Hi]
서기[Secretario]: 박창운[Ramon Pak]
부서기[Vice-Secretario]: 임병일[Felipe Yim]
재무[Tesorere]: 장성실[Francisco Chang]
총무[Director]: 이인화[Andres Lee]
평의원[Vocales]: 차희관[Francisco Cha], Elio Lim, 장영기[Angel Chang], Miguel Kin, Miguel Go, Pedro Kim
[1923년도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임원 명단]
회장[Presidente]: 김치일[Manuel Kim]
부회장[Vice-Presidente]: 이세창[Alfonso Lee]
총무[Director]: 장영기[Angel Chang]
부총무[Vice-Director]: José Kim
서기[Secretario]: 임천택[Ernesto Lim]
재무[Tesorere]: 박창운[Ramon Pak]
평의원[Vocales]: Manuel Li, 연경은[Eduardo Yen], Lorenzo Soh, Manuel Kim, Simon Han, Pedro Pak
교사[Maestro]: 고창덕[Francisco Coh]
구제원[Distributor]: 이인환[Andres Lie]
외교원[Intepretoe]: 이종헌[Roberto Lie]
대의원[Vigilante]: 양춘명[Alvare Yang]
[1924년도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임원 명단]
회장[Presidente]: 서문경[Pedro Soea]
부회장[Vice-Presidente]: 김덕순[Pedro Kim]
총무[Director]: 김봉희[Miguel Kim]
서기[Secretario]: Miguel Sosa
재무[Tesorere]: 임병일[Felipe Lim]
학무원[Director de Instruccion]: 이희택[Manuel Lee]
외교원[Inerprete]: José Pak
평의원[Vocales]: 박창운[Ramon Pak], Manuel Kim, José Ceo, 임천택[Ernesto Lim], 이성준[Pedro Lee], 장영기[Angel Chang], Andres Pak, Fernando Jo, Aalvaro Kim
[1925년도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임원 명단]
회장[Presidente]: 김치일[Manuel Kim]
부회장[Vice-Presidente]: 박덕렵[Miguel Pak]
총무[Director]: José Ceh
서기[Secretario]: 서병학[Miguel Soh]
부서기[Vice-Secretario]: Roberto Lee
재무[Tesorere]: 윤유홍[Angel Yun]
학무원[Director de Instruccion]: 김덕순[Pedro Kin]
외교원[Inerprete]: 박창운[Ramon Pak]
평의원[Vocales]: 이세창[Alponso Lee], José Kim, Felipe Kim, Pedro Seh, Lorenzo Seh, 태덕일[Rafael Tek], 방한조[Francisco Pang], 주한옥[Pablo Choo], Pedro Lee
[1926년도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임원 명단]
회장[Presidente]: 이세창[Alonso Lee]
부회장[Vice-Presidente]: 서문경[Pedro Soea]
총무[Director]: 장영기[Angel Chang]
서기[Secretario]: 서병학[Miguel Soh]
재무[Tesorere]: 배기화[Ignacio Pich]
학무원[Director de Instruccion]: 서선약[Lorenzo Sosa]
법무원[Juaz]: 안순필[Pedro Han]
구제원[Director de Socorro]: 부경조[Eulogia Puga]
외교원[Inerprete]: 박창운[Ramon Pak]
평의원[Vocales]: 임천택[Ernesto Lim], Olegario Yeng, Miguel Pak, 고창덕(Changdoc Coh), Jensoh Kim, Sunhuon Kim
멕시코의 경우와 대동소이한데, 다시 말해 1921년 쿠바로 재이민을 간 한인들도 멕시코에 있을 당시부터 스페인어 이름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위의 자료에서 몇 가지 특성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멕시코에서와 약간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멕시코에서와 같이 김, 이, 박 등 주요 성씨는 그대로 표기되어 있다. ‘이’의 경우 ‘Lee’와 ‘Li’도 사용하지만, ‘Hi’와 ‘Lie’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김’도 ‘Kin’을 사용하고 있으며, ‘서’의 경우 ‘Se’, ‘Sosa’, ‘Seh’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름도 멕시코 현지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José’, ‘Manuel’, ‘Miguel’, ‘Felipe’ 등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1926년도 명단에는 한국 이름이 그대로 기재된 경우도 있었다. 아마도 한국 이름과 스페인어 이름을 함께 사용하다 보니, 한국 이름 발음을 그대로 기재한 것으로 보인다.
다음 자료는 쿠바 한인들이 1942년 재미한족연합위원회에 보낸 ‘인구등록증’에 기재된 29명의 명단이다[「쿠바지역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인구등록증」[대한인국민회 자료, 독립기념관 소장 자료]].
스페인어 이름, 부인 이름, 생년월일, 거주지 순이다.
Dimos Chang, Rosa Kim, 1906년 8월 1일, 카르데나스
Alberto Pak Cheng, Maria, 1872년 7월 16일, 아바나
Miguel Con, 1873년 8월 24일, 카르데나스
Aurelio Pak Hi, Prina Kim, 1907년 1월 9일, 카르데나스
Antonio Han, Viude, 1896년 5월 13일, 아바나
Francisco Jan, Magrita Hi, 1880년 8월 19일, 카르데나스
Antonio Jo, 1870년 1월 27일, 카르데나스
Jone Jon, Maria Vaz Quang, 1883년 5월 5일, 카르데나스
Miguel Soh Jang, 1887년 10월 10일, 아바나
Antonio Kim Kang, Viudo, 1871년 5월 5일, 아바나
Agustin Kim, Bomasa Kim, 1886년 8월 2일, 카르데나스
Felipe Kim, 1875년 2월 2일, 아바나
Juan Kim, Octabiana Herresa, 1883년 1월 29일, 카르데나스
Manuel Kim, Maraia Kim, 1873년 3월 7일, Campte
Manuel Lee Kim, Ofelia, ?년 12월 17일, 아바나
Manuel Kim, 1887년 4월 20일, 아바나
Manuel Kim, Jimana Rodriguedge, 1891년 8월 25일, 카르데나스
Pedro Kim, 1879년 5월 27일, 카르데나스
Pedro Kim, Maria Pak, 1900년 5월 13일, 카르데나스
Pedro Han, Maria, 1866년 8월 19일, 아바나
Pedro Kim Kim, Anastacia Juan, 1905년 8월 11일, 카르데나스
Roberto Lee Kim, Victoria, 1900년 3월 11일, 마리아나오
Victoriano Kim, Jorefina Jon, 1911년 2월 25일, Campte
Alfonso Kim, Juana, 1915년 11월 1일, 아바나
Carlos Hi Lee, 1890년 2월 3일, 카르데나스
Francisco Kim Lee, 1902년 11월 11일, 아바나
Pedro Pack, 1888년 8월 28일, 아바나
Francisco Pang, 1887년 1월 2일, 아바나
Oreas Pang, 1860년 2월 24일, 카르데나스
1905년 5월 멕시코로 이민을 간 한인들은 모두가 스페인어를 할 줄 몰랐다. 유카탄의 에네켄 농장에는 이준혁과 권병숙이 영어로 통역을 하였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이민을 온 아이들은 마야어와 스페인어를 익혔다. 13세 때 이민을 간 이업동[이흥만]은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스페인어를 빨리 배워서 어린 나이에 농장에서 통역 일을 하였다. 이종오의 아들 이봉호도 9세 때 유카탄주에 왔기 때문에 스페인어에 능숙하였다. 어린 나이에 이민 온 아이들은 스페인어를 배웠고, 현지의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마야어도 배웠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인들 사이에서만 사용되는 한국 이름과 멕시코인들과 일을 하면서 사용하는 스페인어 이름 두 가지를 가지고 생활하였다. 성씨는 한국 성씨를 대부분 그대로 사용하였고, 출생신고나 외국인 등록을 할 때 스페인어식으로 약간 변형을 하였다. 현재까지 나온 자료와 연구된 자료를 종합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 성씨: 스페인어 성씨
김(金): Quim, Kim, Kin, King, Garcia, Guin
이(李): Lee, Li, Lie, Rhi, Hi, Hisi, Lias, Y, Diaz, Lizama
박(朴): Pak, Park, Pac, Pack, Bakeido
조(趙, 曺): Cho, Choo
최(崔): Choy, Choe, Che, Chenge
장(張): Chang, Jang, Chans, Changs
강(姜, 康): Kang, Kanga, Guang
서(徐): Se, Soh, Sosa, Sausi, Seh, Sour
윤(尹): Yun, Yung
정(鄭, 丁): Cheng, Chung
전(全, 田): Jan, Jon
홍(洪): Hong
안(安): Han
한(韓): Han, Hahn
유(柳, 劉, 兪): Yu
허(許): Jimenez
도(都): To
황(黃): Juares, Juang
임(任, 林): Yim, Lim
백(白): Peck
양(梁, 楊): Yang, Yanes, Llanes
권(權): Kwan, Kwang, Con
공(孔): Kong, Cong
고(高): Coh, Corona
황보(皇甫): Whangpo
차(車): Cha
함(咸): Ham
연(延): Yen
호(扈): Jo
부(夫): Pug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