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
|---|---|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 지역 | 아르헨티나 |
| 시대 | 현대/현대 |
| 원어 주소 | Argentin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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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문 주소 | Argentina |
아르헨티나 한인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경제활동.
이민 초기 편물, 요코 삯일, 봉제업에 집중되어 있던 아르헨티나 한인 경제는 1980년대 중반부터 원단 판매, 의류 생산업과 의류 소매업까지 진출해 의류업 전반이 한인 경제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1985년 신이주민들의 유입으로 이러한 흐름이 강화되어, 아르헨티나 한인들은 이주 30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아르헨티나에서 중산층 이민족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2001년 경제위기를 전후로 교민 수가 급감했지만, 2004년 아르헨티나 내수경기 회복 기간 의류업계가 다시 호황을 누리면서 1.5세대와 2세대가 의류업에 뛰어들며 한인 의류업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2020년을 전후로 한인들은 한식업 등 한국 문화와 관련된 서비스업 분야로도 진출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초기 아르헨티나 한인 이민자는 대부분 노동집약적 산업이자 진입장벽이 낮았던 의류업에 종사했다. 처음에는 유대인들로부터 일감을 얻어 편물 삯일 및 봉제일을 생계 수단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980년대를 전후해 점차 봉제업에서 의류 도매 및 생산, 그리고 의류 소매업에까지 진출하기 시작했다. 볼리비아와 파라과이 지역에서 재이주한 한인들로 교민 인구가 늘어나자 지방으로 이사해 의료 소매업자로 생계를 이어 가는 한인들도 생겨났다. 이는 의류 도매 가게가 밀집한 부에노스아이레스 자치시 온세(Once) 지역에 한인 도매업자가 늘어나는 발판이 되었다. 이러한 추세는 1984년 한인 원단 생산 및 판매업자가 여러 곳 생겨나면서, 또 1985년을 기점으로 한국에서 투자 이민이 몰려들면서 가속화되었다.
1985년 4월 ‘한-아르헨티나 간 한국이민 송출 및 접수절차에 관한 의정서’가 체결되면서 투자이민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이민의 물결이 불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당시 뉴욕의 아르헨티나 국영은행에 미화 3만 달러를 예치하면 조건 없이 한인들에게 영주권을 발급하고 만 2년이 지나면 예치금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 이민자들의 유입과 이들이 가져온 자본금 덕분에 한인 경제와 한인 의류업계가 크게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1980년대 초 백구촌에서 퇴거 명령을 받은 대다수 한인이 인근 지역 카라보보 주변 지역에 정착했는데, 신이민자들이 언어적인 제약 등으로 인해 한인 밀집 지역에 거주하기 시작하며 카라보보 대로를 중심으로 한인타운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교민들을 대상으로 한 부동산, 침술원, 자동차 정비, 목욕탕, 기원 등이 생겨났고, 스포츠 분야 및 음악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유입되면서 기존 아르헨티나 한인 이민자들은 1960·1970년에 비해 더 ‘한국적인’ 삶을 영위하게 되었다.
한편, 1992년 아르헨티나는 달러와 페소의 환율을 일대일로 고정시키는 태환 정책을 실시하였다. 물가 폭등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였지만, 장기적으로는 국내 제조업의 위축, 외화 유출, 실업률 증가, 공공서비스 요금 인상 등 경제 침체를 불러 왔다. 다행히 환율이 안정되어 한인들은 어떤 식으로든 사업을 이어 나갈 수 있었지만, 의류업계에도 마진율이 절반 이상으로 감소했고 업계 내 경쟁이 과열되면서 한인들은 의류 소매업자로 지방에 진출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또 스웨터 공장을 운영하는 등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교민들도 나타났다. 이 시기 일부 한인은 두부, 콩나물, 참기름, 떡 등 한국 식품을 제조하는 일에 뛰어들기도 하였다.
2001년 아르헨티나 경제위기 이후, 수입이 어려워지자 내수 산업이 다시 활성화되었고, 의류업계도 점차 새로운 호황기를 누리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 후반부터 온세 지역에서 플로레스 지역 아베야네다 대로 주변으로 도매 의류 가게들이 이전하며 2000년대 의류 도매업의 중심이 아베야네다로 옮겨 갔고, 한인 경제의 축도 아베야네다로 이동해 갔다. 이 시기 많은 1.5세, 2세들이 부모들이 하던 의류 도매사업을 물려받아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특히 의과대학, 치과대학, 법과대학 등을 졸업한 전문직 종사자들까지 의류업에 귀결되는 사례를 흔히 목격할 수 있었다. 부모 세대가 오랜 시간 고생해서 일궈 놓은 사업을 처분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아르헨티나 전문직 종사자의 수익이 가족 사업을 경영해서 얻는 수입에 비해 훨씬 적었기 때문이다.
현지에서 나고 자란 한인 2세들은 언어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부모 세대와 달리 더욱 현지화된 마케팅 전략으로 한인 의류업종의 수준과 위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였다. 결과적으로, 한인 경제는 의류업종을 중심으로 이전보다 더 공고해졌고, 재아르헨티나 한인 상인 연합회도 경제활동뿐 아니라, 한인 단체로서 한인 사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기관으로 성장하였다. 현재 아베야네다 지역은 아르헨티나는 물론, 최대 의류 유통단지로 성장했으며, 2020년 기준 2,800여 개의 상가 중 한인 도매상은 54.4%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2020년 코로나19로 아르헨티나 한인 경제는 큰 타격을 받았다. 물론 코로나19 이전부터 아르헨티나 경제상황이 악화되고 있있기 때문에 한국 또는 제3국으로 재이주하는 아르헨티나 한인 동포의 수가 늘어가는 추세였다.. 아르헨티나에 남은 한인 의류업계는 봉쇄령 기간 온라인 판매를 통해 경제활동을 이어 갔다. 재아르헨티나 한인 상인 연합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인 의류업자 중 40%는 비대면 판매를 병행하고 있다.
코로나19 기간, 한인 업자들 중 일부는 의류업을 접고 요식업계 등 업종을 변경하였다. 코로나19로 넷플릭스 등 OTT 서비스도 가입자 1.600만 명이 늘어나는 등 큰 호황을 누렸는데, 이때 「오징어 게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 여러 한국 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면서, 아르헨티나 현지에서도 한국 문화와 한식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였다. 그 결과 2020년을 전후로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 중심가에서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여러 한식당이 개업하는 등 외식업에 종사하는 한인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