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桑田碧海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 지역 | 브라질 상파울루주 상파울루시 |
| 시대 | 현대/현대 |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92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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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몰년 시기/일시 | 2023년 |
| 편찬|간행 시기/일시 | 2010년 12월 15일 |
| 원어 주소 | São Paulo, SP, Brasil |
| 성격 | 자서전 |
| 작가 | 박선관 |
제1차 집단 영농이민단의 일원으로 브라질 땅을 밟았던 박선관의 자전적 이민 수기.
남미로의 이민은 1950년대 이승만 정권하에서도 추진되었지만, 브라질 1차 농업 이민은 1961년 5월 16일 군사쿠데타 직후 들어선 국가재건최고회의[군정의 실질적인 최고 통치 의결 기구]에 의해 송출되었다. 제1차 농업 이민[17가구 92명과 11명의 전향 군인으로 세대주]은 1962년 12월 18일 보건사회부 한국진 차관의 환송을 받으며 네덜란드 선박 치차렌카(Tjitjalenka)호를 타고 부산을 떠났고, 1963년 2월 12일 브라질 산투스항에 도착하였다. 『상전벽해』는 11명의 전향 군인들 중 한 사람인 박선관이 자신의 60년 동안의 브라질 생활을 기록한 자서전이다.
박선관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기 직전인 1946년 6월, 해군으로 소속이 바뀌어 인천 해양경비대 견습사관이 되었다. 그리고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는 유엔군의 극동함대 연락장교로 일본 사세보(佐世保)에서 근무하였다. 따라서 그의 자서전 『상전벽해』는 다음의 내용을 포함한다. 첫 번째, 브라질 이민 희망자들의 심리를 알 수 있는 1960년대 한국의 혼란 및 사회상, 두 번째, 제1차 영농 이민으로 도착한 사람들의 농장에서의 적응 및 개척 생활, 그리고 세 번째, 생존을 위해 상파울루시로의 이주, 이후 ‘제품’에 뛰어들게 된 배경, 어린 세 자녀의 학업을 지속하기 위한 노력, 자녀들의 브라질 사회 진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네 번째 마지막 부분에서는 자신이 지내 온 브라질에서의 삶에 만족감을 드러내고 있다.
부산을 떠나 52일 동안의 선상 생활 후 도착한 브라스 이민수용소에서의 생활, 그리고 농장에서 고군분투할 당시의 상황과 어려움에 대한 소회를 기술하고 있다. 가족[아내와 세 아이들]과의 합류는 10개월 뒤인 1963년 12월[2차 브라질 농업 이민단에 합류하여 1963년 11월 10일 산투스항에 도착]에서야 이루어졌다. 박선관은 곧바로 파라나 협동개발 농장에 입주하여 농업과 양계업에 종사하였다. 그는 자신의 생활을 1965년 브라질에서 발간된 일본 잡지 『농업과 협동(農業と協同)』에 「자매 만들기 운동(姉妹つくり運動)」이란 제목으로 기고했는데, 한인들의 초기 브라질 이민 생활 적응에 일본인들이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었는지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박선관의 『상전벽해』는 1960년대 초 한국의 사회상과 브라질에서의 생활을 기록한 것으로, 한인 동포들이 지난 반세기 동안 겪은 고통과 성취의 이민사를 보여 주는 소중한 자료이다. 박선관은 육사 출신이자 해군 창설 멤버로, “한국 해군 창설 당시 군내에 만연했던 파벌과 정치적 권모술수에 대한 환멸”과 16년의 해군 생활 중 7년을 선상에서 보내며 막연하게 외국에서의 삶을 꿈꾸다가, 쿠데타로 집권한 군정에 의해 1961년 7월 예편되면서 이민을 실행에 옮겼다.
박선관은 군 출신답게 이민 초기부터 1세대로서의 사명감을 갖고, 브라질에 도착한 직후부터 자신의 생활을 꼼꼼히 기록하며 자서전을 준비하였다. 2010년 한국을 방문하여 출판사 교음사에서 그해 말 자신의 자서전을 출판하였다. 그리고 브라질에 돌아가 2012년 브라질 한인 성당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