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白玉彬日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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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 지역 | 브라질 상파울루주 상파울루시 |
| 시대 | 현대/현대 |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923년 11월 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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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찬|간행 시기/일시 | 2021년 |
| 원어 주소 | São Paulo, SP, Brasil |
| 성격 | 일기|단행본 |
| 작가 | 백옥빈 |
제1차 브라질 집단 영농 이민단장 고계순의 부인인 백옥빈이 브라질 생활을 일기 형식으로 남긴 기록물.
백옥빈은 1923년 11월 1일 생으로, 평양 정주읍 공립보통학교와 경성여자사범학교를 졸업한 이후, 평안북도 정주군 운전국민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한 신여성이었다. 1942년 7월 2일 서울에서 고계순과 결혼한 이후, 영등포구에 있는 국민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였다. 남편 고계순은 사촌형인 고광순의 권유로 브라질 이민을 신청하였다. 당시 고계순은 다른 이민 희망자들보다 이민 신청을 늦게 했으나, 정부당국[보건사회부]은 그를 브라질 제1차 집단 영농 이민의 단장으로 임명하였다. 그것은 그가 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였기 때문이다.
백옥빈은 배를 타기 직전 당시 가장 영향력이 있던 월간지 『사상계(思想界)』 기자로부터 기고문 제안을 받았다. 이에 선상 생활부터 브라질 도착 이후의 2~3년 동안의 생활을 일기 형식으로 『사상계』에 기고하였다. 이 외에도 백옥빈의 글은 여성 잡지 『여원(女苑)』에서도 다루었으며, 2021년 한국이민사박물관이 『백옥빈 일기』로 출판하였다.
40세에 브라질 이민길에 오른 백옥빈은 1962년 12월 17일 부산에서의 마지막 밤부터, 브라질 산투스항(Santos港)에 도착하기 이전까지 네덜란드 선박 치차렌카(Tjitjalenka)호에서의 선상 생활을, 그리고 1963년 2월 12일 브라질 도착 이후 농촌 생활에서의 생활과 상파울루로 이주한 이후 도시에서의 적응 및 정착 과정을 비교적 자세히 기록하였다.
1962년 12월 18일 부산에서 출발한 치차렌카호는 일본 오키나와,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페낭(Penang), 모리셔스(Mauritius), 포르투갈령 로렌수마르케스(Lourenço Marques),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더반(Durban)과 포트엘리자베스(Port Elizabeth), 케이프타운(Cape Town),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를 거쳐 1963년 2월 12일 마지막 항구인 산투스항에 55일 만에 도착하였다. 그녀는 이 선상에서의 생활뿐 아니라, 각 항구에서 한인들이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브라질 도착 이후 아리랑 농장을 구입하게 된 배경과 이후 도시에서의 생활 중 교민회를 둘러싼 한인들의 활동과 갈등에 대해서 1966년까지 비교적 상세하게 일기 형식으로 기록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82세가 된 2004년까지 간헐적으로 일기를 써 나갔다.
일기의 목적이 한국 잡지에 기고하는 것이었으므로, 개인의 일기라기보다는 한국 독자들을 위한 브라질 사회와 브라질 한인 생활에 대한 관찰이자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제1차~제4차 농업 이민자들의 농촌 생활에서의 자금난, 인력난, 자녀 교육 문제 등의 고민을 언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족을 포함한 한인들의 도시로의 이주와 도시에서의 여러 가지 삶을 모습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상파울루에서 ‘교민회’[훗날 브라질 한인회로 확대 개편]를 설립하게 된 배경과 구성원들의 특징, 그리고 교민회의 공식 행사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당시 ‘구파와 신파’의 싸움으로 알려진 교민들 간의 상호 대립, 교민 사회와 대사, 영사와의 대립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브라질 한인 사회가 이민 초기 단결하지 못하고 분열과 대립을 일삼는 모습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자신의 의견도 피력하고 있다.
백옥빈은 남편 고계순과 함께 교민 활동을 오랫동안 했기에, 한국에서 온 수많은 손님 대접, 포-한 사전 편찬 계획, 그리고 가톨릭 신자로서 브라질에서 한인 천주교회의 성장 과정을 비교적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그녀가 관심을 보인 것은 브라질 생활에서의 의식주와 관련된 주제들이었다. 예를 들면, 집을 얻을 때 주의해야 할 점, 식재료 가격, 버스 요금, 봉급 등의 물가를 한화로 환산하여 기록한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3남 1녀를 둔 그녀의 최대 관심사는 어머니로서 자녀 교육이었다. 따라서 브라질 교육제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백옥빈이 1966년까지 『사상계』에 기고한 글은 다음과 같다.
1963년 2월(117호): 「아리랑에 드새는 이민항로-이민주부의 일기」
1963년 3월(118호): 「이민선 남인도양을 통과-고국의 향수를 달래주는 두 장의 한국판레코드」
1963년 4월(120호): 「불안해지는 마음을 달래면서」
1963년 5월(121호): 「브라질의 한국인-사육제의 흥분 속에서 향수의 세례를」
1963년 8월(124호): 「아리랑촌 GUARAREMA-브라질 노변에 핀 무궁화」
1963년 10월(126호): 「친절한 브라질 사람들-기쁘나 슬프나 노래로써 향수를 달래는 한국이민들」
1964년 1월(130호): 「브라질의 환희-환희 뒤에는 향수의 정이 잇달아 서린다」
1964년 5월(134호): 「향수를 달래며-첫 번째 새해를 맞이하는 브라질의 한국인들」
1964년 6월(135호): 「이역에서 맞은 3.1절-3.1절 정신 이어받아 재백교민합심하자」
1964년 7월(136호): 「브라질 군부혁명과 교포-적색으로 화를 입는 한국계 중국계 동양인들」
1964년 10월(139호): 「이역에서 출생한 2세들」
1965년 11월(153호): 「2년 반이란 세월을 보내고-잡초만이 우거진 아리랑 농장」
1966년 9월(161호): 「흑녀(黑女)에의 향수-태양을 상징하는 화려한 사육제」
『백옥빈 일기』는 브라질 한인 이민 당사자의 첫 번째 기록으로, 브라질 한국 이민 50주년 기념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개최한 ‘브라질 이민 50주년 기념 특별전’[2014년 4~6월]에 원본이 전시되었다. 또 인천광역시 한국이민사박물관이 2021년 남미 한인 이민사를 주제로 특별 기획전을 준비하면서 2020년 12월 2일 개최한 ‘2020년도 한국이민사박물관 남미한인 학술회의: 브라질 한인 이민의 특징과 전시 제언’ 학술 행사에 최금좌가 발표자로서 참석했는데, 이때 최금좌가 초청한 안경자의 건의 및 제안으로 1년 후인 2021년 한국이민사박물관에 의해 『백옥빈 일기』가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2023년 백옥빈은 100세를 맞이하였다. 이에 그해 2월 12일 상파울루주의회가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브라질 한국 이민 60주년 기념행사’에서 그녀에게 100세 축하 겸 특별상을 수상하였다.
『백옥빈 일기』는 브라질 집단 영농 이민자들의 선상 생활뿐 아니라, 브라질 도착 이후 브라질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과 사회적 갈등을 언급하고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그런데 또 다른 특징은, 남편 고계순이 브라질에 도착한 이후 지방에서 의사 면허증을 따고 교민회 제3대 회장[1964]을 역임하였으며, 백옥빈 역시 1966년 교민회 이사회에서 이사로 선출되어 두 부부가 함께 오랫동안 교민회 활동을 했다는 점이다. 당시 그녀가 여성으로서 교민회에 깊숙이 관여한 활동을 통해서, 브라질 한인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 향상’이라는 주제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도 평가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