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로니모」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작품/음악·공연 작품 및 영상물
지역 쿠바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창작|발표 시기/일시 2019년
촬영지 쿠바
원어 항목명 Jeronimo
원어 주소 Cuba
영문 주소 Cuba
성격 다큐멘터리
감독(연출자) 전후석[조셉 전(Joseph Juhn)]
주요 등장 인물 헤로니모 임|파트리시아|마르타[임은희]|전후석
공연(상영) 시간 93분
정의

2019년 재미교포 변호사 전후석이 쿠바 한인 이민 2세 헤로니모 임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개설

「헤로니모」는 재미 한인 변호사 전후석[조셉 전(Joseph Juhn)]이 2019년 쿠바 한인 이민 2세 헤로니모 임 김(Jeronimo Lim Kim)[임은조]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제작자는 로이 최(Roy Choi)이고, 공동 제작자는 말레스 가브리엘 프린츨(Marles Gabriele Prinzl)과 전의석[William Juhn]이다. 영화 상영 시간은 1시간 33분이다.

내용

영화는 주인공 헤로니모 임이 참석한 마나티항(Manati港)쿠바한인이민80주년기념탑 건립식에서 시작된다.

전후석 감독은 쿠바를 방문하여, 헤로니모 임의 딸 파트리시아가 운전하는 택시를 타면서 쿠바 한인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7년 후 다시 남동생과 쿠바를 방문하여 본격적으로 헤로니모의 삶을 추적하였다. 헤로니모가 태어나고 자란 마탄사스주 마탄사스를 찾았고, 그의 동생 마르타[임은희]도 만났다.

헤로니모는 마탄사스 관립학교[Instituto Provincial]를 다닐 때 학교에서 똑똑하고 모범적이며, 야구도 잘하는 우수한 학생이었다고 하였다. 헤로니모는 쿠바의 ‘아테네’라고 불리는 마탄사스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자유와 투쟁 정신을 배웠다. 1944년 관립중학교 재학 당시 학생 대표로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 쿠바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는 정당이 있었는데, 젊은이의 존경을 받는 에드아르도 치바스(Eduardo R. Chibas)가 만든 쿠바인민당[Pueblo Cubano Ortodoxo]이었다. 헤로니모도 치바스를 매우 존경해서 그와 단독 인터뷰도 하였고, 후에 피델 카스트로(Fidel Alejandro Castro Ruz)도 이 정당에 가입하였다.

헤로니모는 마탄사스에서 풀헨시오 바티스타(Fulgencio Batista y Zaldivar) 독재정권에 저항하였다. 헤로니모는 정부 관리가 병원비로 사용할 돈을 불법으로 갈취한 데 대해 부당함을 역설하며 시위에 앞장섰다가 경찰에 체포되어 감옥에 갔다. 그 후 치바스가 변호사를 선임하여 주어 무죄로 석방되었다. 관립중학교를 졸업하고 1946년에 쿠바의 한인으로서는 최초로 아바나대학교[Havana University] 법대에 입학하였다. 그가 아바나대학교 법대에 들어갔다는 소식은 멕시코의 한인 사회에까지 퍼졌다.

헤로니모는 아바나대학교 법과의 동급생으로 피델 카스트로를 만났다. 당시 마탄사스의 한인들은 에네켄 농장에서 일을 하였는데, 에네켄 농장에서 힘들게 번 돈을 조국의 독립운동 자금으로 제공하였다. 헤로니모의 아버지 임천택은 쿠바의 한인들은 자신들의 조국을 일제의 압제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에네켄 농장에서 힘들게 번 돈을 독립을 위한 자금으로 기꺼이 보냈다. 바티스타 대통령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을 때, 헤로니모는 자신의 조국 쿠바의 자유를 위한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피델 카스트로는 무장투쟁을 통해 바티스타 정권을 타도하려고 하였고, 시에라 마에스트라 정글에서 무장투쟁을 하였다. 헤로니모아바나에서 비밀조직에 참여하여 혁명군에게 무기와 음식을 제공하였다. 이 영화에서, 당시 헤로니모는 “정부를 방해하는 일을 하였고, 돈과 약품을 모아 시에라 마에스트라로 보냈다.”고 말하였다. 1959년 1월 1일 피델 카스트로의 혁명군이 독재자 바티스타 정권을 축출하자 헤로니모는 혁명군 경찰의 간부가 되었다.

1960년 쿠바와 북한이 수교를 하면서, 쿠바 주재 북한 대사관 요원이 헤로니모를 만나러 왔다. 헤로니모가 1967년 자녀들에게 쓴 편지에 “나는 프롤레타리아 노동자들의 해방을 위해 싸우는 이들과 운명을 같이하기로 했다.”고 했다. 쿠바혁명 이후 헤로니모는 체 게바라(Che Guevara)가 장관으로 있는 산업부에서 일을 하였고, 1963년 식량부의 책임자가 되었다. 헤로니모는 헌신적으로 일을 하였고, 그 능력을 인정받아 차관보까지 승진하였다. 쿠바혁명과 정부에 헌신한 공을 인정받아 9개의 훈장을 받았다. 쿠바 정부의 정보국에서도 일을 하며, 북한도 다녀왔다.

소련이 붕괴하면서 쿠바의 경제 상황은 극도로 악화되었고, 생활상으로 고난을 받았다. 1995년 광복 50주년을 기념하여 세계한민족축전을 개최하면서, 한국 정부의 초청을 받아 고국의 땅을 밟게 되었다. 2004년 아버지 임천택이 대한민국 정부가 주는 훈장을 추서받으면서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 그리고 손자 넬시토가 국내에 와서 할아버지 임천택의 묘지를 참배하고 한국의 여러 곳을 여행하고 문화를 경험하였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는 ‘리뷰(review)’라고 하여, ‘헤로니모’를 만났던 사람들의 회상록을 담았다. 헤로니모 임은 2006년 1월 19일 세상을 떠났고, 쿠바 유공자들이 묻히는 쿠바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의의와 평가

「헤로니모」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는 헤로니모 임이라는 한인 2세를 통해, 쿠바 한인 디아스포라의 의미와 현재적 가치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그리고 쿠바에 사는 한인 후예들의 존재와 그들의 역사를 정리하며 한인들이 스스로 정체성을 지키기 위하여 헌신하였던 사실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참고문헌
  • 임천택, 『쿠바 이민사』(태평양주보사, 1954)
  • 『국외독립운동사적지 실태조사보고서』4(국가보훈처·독립기념관, 2004)
  • 라울 루이스·마르타 림 김, 『쿠바의 한국인들』(재외동포재단, 정경원 외 옮김, 2004)
  • 전후석, 『당신의 수식어』(창비교육, 2021)
  • Raul R. Ruiz·Martha Lim Kim, 『Coreanos en Cuba』(Fundación Fernando Ortiz,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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