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營農移民團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 지역 | 아르헨티나 |
| 시대 | 현대/현대 |
| 원어 주소 | Argentina |
|---|---|
| 영문 주소 | Argentina |
| 성격 | 이민 단체 |
1960년대 중후반 아르헨티나 농촌 지역에 집단 이주한 한인 영농이민단.
아르헨티나의 한인 이민은 1962년 한국 정부의 인구 감소 정책과 실업·빈곤 문제 해결책으로 추진되었던 남미 계약 이민의 하나로 시작되었다. 1962년 「해외이주법」이 발효되어 이민이 활성화되면서 서울의 도림교회를 중심으로 아르헨티나 이주를 희망하는 사람들을 모집하였다. 세부적으로는 1965년 13가구[78명]의 1차 이민단, 같은 해 부산에서 출발한 2차 이민단 7가구가 영농 이민의 효시였으며, 이후 해외개발공사가 영농이민을 추진하여 입국한 9가구 3차 영농이민단까지 아르헨티나에 입국하였다.
1963년 박민홍과 홍종철을 선두로 한 세계기독교봉사회가 아르헨티나 정부에 한국인들의 집단 이민 의사를 피력하여, 리오네그로주 라마르케에 있는 400만㎡의 땅을 무상으로 임대받았다. 이에 1965년 8월 17일 ‘아르헨티나 1차 계약 이민단’ 13가구 78명은 ‘파라과이 5차 이민단’ 10가구 39명과 함께 보이스벤(Boissevain)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1965년 10월 14일 저녁 9시 부에노스아이레스 레티로항에 도착하였다. 이들이 아르헨티나에 도착하고 3일 후 2차 이민단도 부산에서 루이스호를 타고 출발하였다. 해외개발공사가 추진하여 3차 이민단 9가구도 뒤이어 아르헨티나 도착하였다.
라마르케[포모나]는 미개척 농지였으며, 농사 여건 및 생활 환경이 열악하여 이곳으로 들어온 13가구[일명 ‘서울세대’]가 1년여 만에 농사를 포기하고 부에노스아이레스로 향했다. 1966년 10월 한국 정부가 지원한 낡은 농기계를 가지고 후발대로 농장에 합류한 8가구, 일명 ‘부산세대’는 ‘서울세대’로부터 흙벽돌집을 헐값에 매입하고 토질이 좋은 곳을 골라 공동 경작을 시작하였으나, 이들 역시 궁핍한 생활과 자녀 교육 문제를 견디지 못하고 대부분이 농장을 떠났다. 한국 이민자들이 약속을 이행하지 못함에 따라 리오네그로주 정부는 무상으로 임대해 주었던 400만㎡ 중 대부분의 토지를 회수하였는데, ‘부산세대’인 은준기는 남아서 농장을 운영하였다.
2024년 기준 ‘부산세대’인 은준기의 후손 은명희가 리오네그로주 포모나 지역에서 100만㎡ 규모의 은하수농장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