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韓伯文化協會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 지역 | 브라질 |
| 시대 | 현대/현대 |
| 설립 시기/일시 | 1961년 4월 |
|---|---|
| 원어 주소 | Brasil |
| 영문 주소 | Brazil |
| 성격 | 이민 교섭 단체 |
| 설립자 | 이종욱 |
1961년 4월 한국에서 브라질 이민을 추진하기 위하여 이종욱이 설립한 단체.
1960년대 브라질 이민을 추진하기 위해 설립한 단체로 한국의 '한(韓)'과 브라질의 한자식 표기인 백랄서이(伯剌西爾)의 백(伯)의 의미를 담아 한백문화협회라 하였다.
이종욱은 1961년 4월 중순 서울에서 한백문화협회를 설립하였다. 회장은 이종욱 자신이 맡고,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 졸업생인 배성욱과 정규호가 문화 담당을 맡았다. 이 즈음 브라질에서 김수조와 함께 이민 사업에 대한 가능성을 타진한 정인규는 귀국 직후 이종욱이 만든 한백문화협회에 가입하였다. 이는 한백문화협회만이 한국에서 브라질 이민 희망자를 모집할 수 있는 유일한 합법적 단체였기 때문이었다.
당시 이종욱은 무관 시험에 합격하여 중령으로 승진하고 대기 발령 상태였다. 따라서 군인의 신분으로 한백문화협회 회장을 지속적으로 맡는 것에 무리가 있다고 판단[협회가 이민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민간 단체로 등록해야 했기 때문]하고 예편한 정인규 대령을 제2대 회장으로 추대하였다. 이종욱은 정인규가 박정희의 육사 2기 동기라 협회의 활동을 위해서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런데 4.19혁명 이후 7개의 이민 단체가 난무하자, 정부에서 이들 단체를 통합하여 한국이민협회[회장 김동성]를 발족시켰다. 한백문화협회 역시 경쟁사였던 남미공사와 함께 ‘한국이민협회’에 흡수되는 형식을 취하였다. 전임 이승만 정부에서 해외 이민 사업이 전혀 진척을 보이지 않은 것은, 이승만 대통령이 외화를 해외에 반출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민을 허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61년 5.16군사쿠데타가 일어나자 정인규는 한편으로는 제대장병동우회를 결성하고, 또 한편으로는 제대 군인을 규합한 이민 계획을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에 건의하였다. 이는 군사쿠데타에 동의하지 않은 육사 출신 군인 장교들에게 퇴로를 열어 주는 기회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정인규는 브라질 이민을 합법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한백문화협회를 한백진흥주식회사로 개칭하고, 운영 체제도 사단법인으로 바꾸었다. 이어 이종욱 초대 회장이 브라질 정부로부터 초청 허가를 받은 ‘한백문화사절단’ 14명의 명단을 재조정하고, 1명을 더 추가하여 브라질 입국 수속을 밟았다. 한백문화사절단 15명은 정인규[단장], 박대진, 윤황선, 김상진, 정수남, 홍관순, 한춘교, 심준열, 박종식, 이종만, 이철희, 김용, 목진태, 최준덕, 고광순이었다.
오늘날 브라질 이민을 추진하는 단체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브라질의 교류가 경제적인 측면에서나 문화적인 측면에서 폭발적으로 활발해짐에 따라 관련한 정부 기관과 민간 기업들이 브라질에 많이 진출해 있다. 오늘날 한백문화협회와 같은 역할을 하는 단체로는 외교부 산하의 한·중남미협회와 민간 차원의 한국브라질소사이어티[KOBRAS]를 꼽을 수 있다.
한백문화협회는 이종욱이 개인적으로 브라질 이민 사업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 조직한 단체이다. 그러나 이민 사업이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내자 이민 희망자들을 모집하는 비슷한 성격의 단체 ‘남미공사’와 경쟁해야 했으며 또한 정부와도 대립하고 갈등하였다. 당시 한국 정부가 난무하던 여러 단체를 한국이민협회라는 이름으로 통합시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인규는 브라질 이민을 합법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한백문화협회를 사단법인 한백진흥주식회사로 바꾸었고, 1961년 12월 한백문화사절단을 이끌고 브라질을 다시 방문했는데, 그 구성원들이 각자 이민 사업을 추진하여 1960년대 4차에 걸친 브라질 집단 영농 이민을 탄생시키는 결과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