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손

한자 李次孫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자치시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7년
몰년 시기/일시 1980년
출생지 강원도 원산시
활동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자치시
원어 주소 Ciudad Autónoma de Buenos Aires, Argentina
성격 사회 활동가
성별
대표 경력 재아교민회 고문
정의

1941년쯤 부에노스아이레스항을 통해 들어와 아르헨티나에 정착한 최초의 한인으로 재아교민회 고문을 역임한 사회 활동가.

개설

이차손(李次孫)[1907~1980]은 1941년쯤 외항 선원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항에 입항하여 하선한 후 생을 마칠 때까지 현지에 체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활동 사항

이차손은 1907년(순종 1) 함경남도 원산[현 북한의 강원도 원산시]에서 태어났다. 6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성장하였으며, 일본 국적으로 알려졌다. 17세가 되던 해 일본 외항선의 주방 보조원으로 들어가 기관부에서 근무하였다. 1941년 배가 부에노스아이레스항에 기항하자 무단 하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르헨티나 생활 초기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자치시의 일본인 세탁소에서 일했고, 생활이 안정되자 산타 세실리아 음악학교에 다니며 바이올린을 전공하였다. 콜론 극장에서 연주한 적도 있었다고 전하지만 확인된 바는 없다. 폐결핵을 앓아 음악 활동을 중단하고 일본인 친구가 운영하던 농장에 들어가 요양을 하면서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하였다.

1964년 한국에서 초청한 손경자[2012년 작고]와 결혼하고 알메센[현지인 식품점]을 운영하면서 비교적 편안한 여생을 보냈다. 병약한 데다 한국말이 서툴러 한인 사회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드물었으나 교민 사회에서는 원로 위치에 있었으며, 제2대 재아교민회 때 고문으로 추대되었다. 1980년 10월 21일 74세로 세상을 떠났다.

참고문헌
  • 「아르헨티나 한국학회의 활동」(『아르헨티나 한인이민 50년사』, 재아르헨티나 한인회, 2016)
  • 「아르헨티나 한인사」(『재외동포의창』, 201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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