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朴善寬 |
|---|---|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 |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 지역 | 브라질 상파울루주 |
| 시대 | 현대/현대 |
| 출생 시기/일시 | 1926년 |
|---|---|
| 수학 시기/일시 | 1947년 |
| 활동 시기/일시 | 1961년 |
| 활동 시기/일시 | 1963년 |
| 거주|이주지 | 브라질 상파울루주 |
| 학교|수학지 | 서울특별시 노원구 화랑로 574[공릉동 산230-30] |
| 활동지 | 브라질 상파울루주 |
| 원어 주소 | SP, Brasil |
| 성격 | 사업가 |
| 성별 | 남 |
1963년 2월 12일 1차 영농이민단으로 가족과 함께 브라질에 도착하여 양계업과 의류업에 종사하다 자전적 수기인 『상전벽해』를 쓴 사업가.
박선관(朴善寬)은 부인 손계주와 큰아들 박상만, 둘째 아들 박상기, 셋째 아들 박상돈, 큰딸 박정순과 함께 가족 이민을 왔다. 16년의 해군 생활 중 7년을 해상에서 보냈고, 전역 후 외국으로 나가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실천으로 옮겼다. 한국 해군 창설 당시 군 내에 만연했던 파벌과 정치적 권모술수로 인한 원한이 브라질로 이주하게 한 동기였다.
박선관은 1946년 6월 해군으로 소속이 변경되어 인천 해양경비대 견습사관이 되었고, 6·25전쟁이 발발하자 UN 극동함대 연락장교로 일본의 사세보에서 근무하였다 1955년 9월 미 정부가 제공한 구축함을 인수하기 위하여 버지니아주 노포크(Norfolk)에 있는 미 대서양함대사령부에서 교육을 받았던 전도유망한 군인이었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강제 예편하자 생계를 위해 브라질 이민을 결심하고 1차 영농이민단에 속하여 브라질 산투스항에 도착하였다. 박선관은 이주 초기 함께 간 일행 2명과 이타케라에 거주하던 일본인으로부터 토지를 매입하여 병아리 1,500마리로 양계업을 시작하여 5년 만에 9,000마리로 확장하였으나 1969년 1월 농장을 매각하고 상파울루시로 이주하여 의류업에 종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