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산

한자 金壽山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브라질 상파울루주 상파울루시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21년 5월 5일
활동 시기/일시 1964년
몰년 시기/일시 2009년
출생지 중국 단둥시
활동지 브라질 상파울루주 상파울루시
원어 주소 São Paulo, SP, Brasil
성격 기업인
성별
정의

1964년 12월 30일 가족과 함께 브라질로 이주하여 한인 교포 사회의 경제적 기반을 만든 의류 제조업자.

개설

김수산(金壽山)[1921~2009]은 1950년대 초반 부산의 국제시장에서 넥타이와 속옷 등을 만들어 팔다가 브라질로 이주하여 의류 제조업자로 활동하였다.

활동 사항

김수산(金壽山)[1921~2009]은 만주 안동[현 중국 단둥시 지역]에서 태어났다. 1945년 광복이 되자 처가가 있는 신의주로 이주하였다. 6·25전쟁 중 1.4후퇴 때 남하하여 부산에 정착하였다. ‘의류 제조업자’로서의 기질은 부산의 국제시장에서 발휘되었다. 상인 조합장을 역임하며 넥타이를 만들어서 판 것이다. 대성공을 거둔 김수산은 당시 부산의 부촌인 보수동에서, 전직 한국은행 총재가 살던 저택 한 채를 구입하여 총 아홉 식구[부부와 딸 여섯, 막내 아들]가 살았다.

그런데 정치권에서 그에게 손을 내밀기 시작하였다. 이승만 정권에서도 그랬고 또한 박정희 정권에서도, 여당의 관련자들이 밤낮으로 찾아와 자신의 정당에 가입하라고 강력하게 권유하였다. 그러나 김수산은 아버지의 가르침[“살아남기 위해서는 절대로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아서는 안 된다. (중략) 국가란 ‘큰 아버지’와 같다. (중략) 될 수 있으면 좁은 한반도에 있지 말고, 멀리 다른 큰 나라에 가서 살도록 하여라”]에 따라 브라질 이민을 결행하였다.

김수산은 이철희가 추진했던 브라질 경유 볼리비아 이민단의 일원으로 1964년 12월 30일 가족과 함께 브라질에 도착한 후, 볼리비아로 가지 않고 브라질에 정착하였다. 영주권은 1966년 브로커를 통해 획득하였는데, 그동안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였지만 김수산은 그것을 가족과 함께 브라질에서 새출발을 하기 위해 “당연히 치러야 할 과정이자 비용”이라고 생각하였다. 브라질 경유 볼리비아 이민단의 특징은 농촌에 정착하지 않고, 곧바로 브라질 최대 상공업의 도시인 상파울루에 정착하며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당시 김수산과 함께 브라질에 도착한 사람들은 상파울루 시내에서 주로 철물점, 주차장, 동양 식품점을 경영하거나, 혹은 페이라(feira)라고 불리는 시장에서 과일 장사를 하였다. 또한 상파울루 외곽에서 양계장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김수산도 처음에는 시내 중심가에서 담배 가게를 차렸지만, 브라질에 도착한 지 3개월 만에 또다시 사업가적인 면모를 발휘하였다. 즉 ‘제품’[의류 제조업]을 시작한 것이다.

김수산은 브라질에 도착하자마자 의류 시장 조사를 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입고 있던 잠바를 뜯어서 옷본을 만들고, 그것으로 바탕으로 남성 잠바를 만들어 콩지 지 사르제다스(Conde de Sarzedas) 거리의 상점에 내놓았다. 상파울루 지역은 브라질이 시장을 개방한 1990년 이전까지 여름에는 에어컨이 필요 없고 겨울에는 난방이 필요 없는 살기 좋은 곳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해발 700m에 자리한 상파울루의 날씨는, “하루에 사계절이 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기온의 변화가 매우 심한 곳이다. 더군다나 겨울의 평균온도인 영상 16℃의 실제 체감 온도는 영하 이하로, 내복을 입어야 한다.

김수산이 겨울을 대비하여 만든 첫 작품, ‘남성 잠바’는 성공적이었다. 생각보다 매우 잘 팔리자 일손이 달렸다. 따라서 그는 ‘한인촌’의 여성들에게 바느질 일을 부탁하였다. 이것은 나중에 브라질 한인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포르투갈어로 ‘정성스럽게 만들다’라는 뜻의 의류 제조업, 즉 ‘콘펙상(confecção)’에 종사하게 된 계기가 된다.

참고로 1960년대 집단 영농 이민으로 브라질에 도착한 사람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북한 출신으로 기독교인이며 또한 최소한 고등학교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들 중에는 남대문시장이나 동대문시장에서 이미 옷을 만들어 판, 즉 ‘제품’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김수산이 ‘한국인 촌’의 한인 여성들에게 재봉일을 부탁하자 한인 여성들은 매우 반겼는데, 그것은 당장 현금을 만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인길이 1983년에 쓴 자서전 『송암문학전집』에서는, “당시 한국인 촌에서는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밤이 새도록 들렸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성공한 김수산이 상파울루에서 처음으로 집을 마련한 곳은 연합교회가 있던 리베르다지구(Liberdade區) 토마스 지 리마(Tomas de Lima) 거리였고, 두 번째로 마련한 집은 주엉 지 카르발류(João de Carvalho) 거리였다. 그리고 ‘제품’을 시작한 지 약 2년 만에 마련한 세 번째 집은 캄부시구(Cambuci區) 콘셀레이루 프르타두(Conselheiro Furtado) 거리에 있었다. 둘째 딸 마가리타(Margarita)의 증언에 따르면, 아버지 김수산은 그 집의 규모에 맞게 약 30명이 모여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식탁을 제작하여, 주말이면 집에 친하게 지내던 친지들과 반공포로, 초기 농업 이민자들을 초대하여 브라질식 바비큐인 ‘슈하스코(churrasco)’를 제공했다고 한다[이를 KBS가 1969년 김수산의 집에까지 찾아와 촬영한 영상 자료가 한국에서 방송되었다고, 그의 사위 김인철이 증언하였다]. 그리고 네 번째 집은 일본인촌 리베르다지구 상업 지역인 콩지 지 사르제다스 거리의 상가를 겸한 건물이었는데, 그곳에서 ‘제품’을 체계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김수산은 브라질 한인 사회 ‘제품’ 업계의 선구자였다. 그럼에도 그의 활동 기간이 5~6년[1969~1974년] 정도인 것은 불행한 가족사 때문이었다. 김수산이 가장 사랑하던 큰딸[이화여자대학교 1학년 재학 중 브라질에 도착하여 결혼]이 1968년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또한 1973년 부인 김경자[마르가리다(Margarida)]가 안헴비(Anhembi)에서 개최된 패션쇼에 참가한 이후 과로로 사망하였다. 이후 일본계 젊은 여성과 재혼한 김수산은 상파울루에서 100㎞ 떨어진 도시 산투스(Santos)에서 의류 소매업에 종사하며 살았으나 두 번째 결혼생활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다.

김수산이 브라질 한인 사회에서 처음으로 옷을 만들어 낸 배경은 그가 어느 정도의 자본을 갖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천 등의 재료와 기계 등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는 부산에서 이미 넥타이 및 속옷 등을 제조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당시 사용하고 남은 메리야스 종류의 천들, 다양한 레이스 등의 부속품들, 그리고 기계들을 모두 브라질로 가지고 갔기 때문이다. 김수산이 이루어 낸 개인적인 성공은 그의 밑에서 재봉 일을 하며 일을 돕던 한인들이 따로 독립해 나가서 한인 사회 전체로 확산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여러 한인 제품 업자들이 생산해 낸 의류를 판매하는, 즉 제조업자와 소매상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하는 판매원이란 뜻의 ‘벤데도르(vendedor)’라는 새로운 직종이 생겨났는데, 이는 한인 사회 전체가 ‘제품’에 종사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즉 브라질에 새로이 도착하는 한인 대부분은, 가장 먼저 이 ‘벤데도르’ 일을 시작하며 ‘제품’의 메커니즘을 익히며, 나중에 자신만의 사업체를 시작할 수 있었다.

2009년에 사망한 김수산은, 브라질 현지에서 한인 교포 사회의 중추 산업인 “제품을 가장 먼저 시작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수산의 셋째 딸은 가족과 함께 1990년대 초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여 그곳의 조보(Jobbor)시장에서 의류업에 종사하고 있다.

상훈과 추모

브라질 상파울루시와 의류협회에서 김수산의 공로를 인정하여 코멘다도르(Comendador) 작위를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이인길, 『송암문학전집』(1983)
  • 오응서, 『아마존의 꿈』-브라질 한국인 이민 40년 회고(남미동아일보사, 2004)
  • 최금좌, 「도시 쌍빠울로에서의 생활」(『브라질한인 이민 50년사』, 브라질 한인이민사 편찬위원회, 2011. 11. 1.)
  • Choi Keum Joa, 「Além do Arco-Íris: A Imigração Coreana no Brasil」(Universidade de So Paulo, 1991. 5.)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s://encykorea.aks.ac.kr)
  • 인터뷰(브라질 한인 김수산, 2008.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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