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安順弼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시 쿠바 라스투나스주 마나티 쿠바 마탄사스주 쿠바 아바나시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출생 시기/일시 | 1868년 |
|---|---|
| 활동 시기/일시 | 1905년 5월 |
| 활동 시기/일시 | 1921년 3월 |
| 활동 시기/일시 | 1928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7년 1월 17일 |
| 활동 시기/일시 | 1938년 |
| 활동 시기/일시 | 1940년 |
| 추모 시기/일시 | 2023년 |
| 출생지 |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
| 거주|이주지 | 멕시코 유카탄주 |
| 거주|이주지 | 쿠바 라스투나스주 마나티 |
| 활동지 |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시 |
| 활동지 | 쿠바 라스투나스주 마나티 |
| 활동지 | 쿠바 마탄사스주 |
| 활동지 | 쿠바 아바나시 |
| 원어 주소 | Mérida, Yucatán, México|Manati, Provincia de Las Tunas, Cuba|Provincia de Matanzas, Cuba|La Habana, Cuba |
| 성격 | 독립운동가 |
| 성별 | 남 |
| 대표 경력 | 대한인국민회 아바나지방회 회장 |
1905년 5월 멕시코로 건너가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에서 활동하다 쿠바로 재이주하여 대한인국민회 아바나지방회 회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안순필(安順弼)[1868~1947]은 대한인국민회 카르데나스지방회 법무원,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대한인국민회 마탄사스지방회] 총무, 대한인국민회 아바나지방회 총무와 쿠바 천도교 면종리원 종리사 등으로 활동하였다. 1918년부터 1941년까지 의무금, 인구세, 국민 부담금, 광복군 후원금, 독립금 등 독립운동 자금을 제공하였다. 페드로 한(Pedro Han)으로도 불렀다.
부인은 원정이다. 아들은 안재명이고, 딸은 안정희·안옥희·안호희이다.
안순필은 1868년(고종 5) 경기도 수원군(水原郡) 팔탄면(八灘面) 입암동(立岩洞)[현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지역]에서 태어났다. 1905년(고종 42) 5월 멕시코 유카탄주로 노동 이민을 갔다. 1909년(순종 3) 5월 9일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에 회원으로 가입하였고, 1918년 8월 의무금 2원 50전을 냈다.
1921년 3월 안순필은 쿠바 라스투나스주 마나티로 이주하였으며, 1923년 쿠바 마탄사스주 카르데나스로 거처를 옮겼다. 1923년 8월 29일 대한인국민회 카르데나스지방회가 개최한 국치 기념식에서 ‘나라를 회복’하여야만 하겠다는 뜻으로 연설을 하였고, 1924년 국치 기념식에서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진술하였다. 1925년 대한인국민회 카르데나스지방회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이후 마탄사스주 마탄사스로 거처를 옮긴 안순필은 그해 7월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관 수리비로 1원을 냈다. 1925년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에서는 담례금으로 식량을 구입하여 동포들에게 배급하기 위해 상례회를 조직하였는데, 이때 안순필을 상례회 회장으로 선임하였다. 1926년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법무원에 선출되었고, 2.1국민회 창립식에서 ‘국민회의 의무’라는 주제로 연설을 하였다. 1926년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3.1절 기념식에서 헌법을 낭독하였다.
이후 안순필은 마탄사스에서 카르데나스로 이주하면서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법무원을 사임하였다. 1928년 대한인국민회 카르데나스지방회 총무로 선출되었고, 3.1절 경축식에서 연설을 하였다. 쿠바 천도교는 1931년 3월 7일 카르데나스 바르데로에서 면종리원을 신설하고 안순필을 종리사로 선출하였다.
1937년 1월 17일 아바나의 한인 22명이 안순필의 집에 모여 대한인국민회 아바나지방회를 설립하였는데, 이 자리에서 안순필이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안순필은 1937년 국민회 창립 28주년 기념식에서 연설을 하였고, 3.1절 18주년 경축식에서도 연설을 하였다. 그해 6월 대한인국민회 아바나지방회에서 청년부를 설립하고 교재에 안순필을 선임하였다. 안순필은 같은 해 국치 기념식에서 ‘국치 27년 감상담’을 말하였다. 1938년 2.1국민회 창립식에서도 연설을 하였으며, 그해 대한인국민회 아바나지방회 회장으로 재선출되어 3.1절 경축식에서 연설을 하였다. 같은 해 안순필은 흥민국어학교 교장을 맡아 활동하였다.
1939년 안순필은 대한인국민회 아바나지방회의 연구위원으로 선출되었고, 1940년 총무로 선임되어 2.1국민회 기념식에서 연설을 하였다. 그해 10월 6일 대한인국민회 아바나지방회 집행위원장을 대리하였다. 1941년 대한인국민회 아바나지방회의 감찰위원에 피선되었으며, 1942년과 1943년에도 감찰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안순필은 1943년 11월 17일 순국선열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는 등 대한인국민회 아바나지방회에서 꾸준히 활동하였다.
안순필은 1918년부터 1941년까지 의무금, 인구세, 국민 부담금, 광복군 후원금, 독립금 등의 독립운동 자금을 제공하였다. 1947년 2월 2일 사망하였다.
2023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안순필의 공적을 기리어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