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方擎日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시 쿠바 마탄사스주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활동 시기/일시 | 1905년 5월 |
|---|---|
| 활동 시기/일시 | 1909년 |
| 활동 시기/일시 | 1921년 3월 |
| 추모 시기/일시 | 2021년 |
| 출생지 | 서울특별시 |
| 거주|이주지 | 멕시코 유카탄주 |
| 거주|이주지 | 쿠바 마탄사스주 |
| 활동지 |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시 |
| 활동지 | 쿠바 마탄사스주 |
| 원어 주소 | Yucatán, México|Provincia de Matanzas, Cuba |
| 성격 | 독립운동가 |
| 성별 | 남 |
| 대표 경력 | 대한인국민회 카르데나스지방회 집행위원 |
1905년 5월 멕시코로 건너가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등에서 활동하다 쿠바로 재이주하여 대한인국민회 카르데나스지방회 집행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방경일(方擎日)은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부회장 등으로 활동하였다. 1917~1918년 안창호가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에 왔을 때 도와주었다. 쿠바로 재이주하여 대한인국민회 카르데나스지방회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부인은 김엘니야이다.
방경일은 1861년(철종 12)경 서울에서 태어났다. 1905년(고종 42) 5월 멕시코 유카탄주로 이민을 가서 에네켄 농장에서 노동자로 일하였다. 1908년(순종 2) 80~100페소의 속전을 내고 에네켄 농장에서 해방되었다. 1909년(순종 3) 5월 9일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 지역 한인들이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를 설립할 때 방경일은 부회장에 선출되었다. 이후 방경일은 메리다에서 베라크루스주 헤수스 카란사 와하케뇨로 이주하였고, 1911년 12월 17일 와하케뇨 한인들이 대한인국민회 오학기나지방회를 신설할 때 학무원에 임명되었다.
와하케뇨에서 유카탄주 메리다로 돌아온 방경일은 1915년 5월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의 서기 겸 구제원으로 임명되었고, 1917년 대의원, 1918년 평의원에 선임되었다. 1917년 1월 방경일은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에서 운영하는 해동학교(海東學校)의 감독이 되어 한인 2세 교육을 맡았다. 1917~1918년 안창호가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관에서 머물 당시 방경일 부부가 안창호를 도왔다.
방경일은 1921년 3월 쿠바 마탄사스주로 이주하였고, 다음 해인 1922년 10월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대한인국민회 마탄사스지방회] 학무원으로 임명되었다. 1931년부터 1932년까지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의 서기로 활동하였고, 1937년에는 대한인국민회 카르데나스지방회 집행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또 1928~1930년까지 마탄사스의 민성국어학교 교사로서 한인 2세에게 민족 교육을 시켰다.
방경일은 1917년 이후 대한인국민회 의무금, 인구세, 3.1적립금, 특별외교 의연금, 광주학생운동 동정금 등 여러 차례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다.
2021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방경일의 공적을 기리어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