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梁春明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시 쿠바 라스투나스주 마나티 쿠바 마탄사스주 마탄사스시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활동 시기/일시 | 1905년 5월 |
|---|---|
| 활동 시기/일시 | 1921년 |
| 활동 시기/일시 | 1924년 |
| 활동 시기/일시 | 1928년 |
| 몰년 시기/일시 | 1944년 10월 19일 |
| 추모 시기/일시 | 2020년 |
| 출생지 | 서울특별시 |
| 거주|이주지 | 멕시코 유카탄주 |
| 거주|이주지 | 쿠바 라스투나스주 마나티 |
| 활동지 |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시 |
| 활동지 | 쿠바 라스투나스주 마나티 |
| 활동지 | 쿠바 마탄사스주 마탄사스시 |
| 원어 주소 | Mérida, Yucatán, México|Manati, Provincia de Las Tunas, Cuba|Matanzas, Provincia de Matanzas, Cuba |
| 성격 | 독립운동가 |
| 성별 | 남 |
| 대표 경력 | 대한인국민회 마나티지방회 회장|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회장 |
1905년 5월 멕시코로 건너가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에서 활동하다 쿠바로 재이주하여 대한인국민회 마나티지방회 회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양춘명(梁春明)[1874~1944]은 멕시코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에서 활동하였으며, 1921년 쿠바로 이주하여 대한인국민회 마나티지방회 회장과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대한인국민회 마탄사스지방회] 회장, 민성국어학교 교장 등을 역임하였다.
아들은 양운학(梁雲鶴)이다.
양춘명은 1874년(고종 11)경 서울 교동에서 태어났다. 1905년(고종 42) 5월 멕시코 유카탄주로 이민을 가서 에네켄 농장에서 노동을 하였다.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평의원으로 선출되었으나, 1912년 7월 사임하였다. 이후 쿠바 라스투나스주 마나티로 이주한 양춘명은 1921년 9월 21일 설립된 대한인국민회 마나티지방회의 초대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다시 쿠바의 마탄사스주 마탄사스로 거처를 옮겨서 1922년 12월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대의원으로 선출되었고, 1923년 6월 14일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창립 3주년 기념식에서 기도를 담당하였다. 같은 해 마탄사스 민성국어학교 교장과 교사를 맡아 한인 2세들을 교육하였다. 1924년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의 대의원에 선임되었고, 1925년에는 법무원에 선출되었다.
1924년 양춘명은 다시 민성국어학교 교장을 맡았으며, 1925년에는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대의원에 선임되었다. 또한 마탄사스 한인 감리교회의 권사와 간사를 맡아서 각종 행사에서 기도와 절차위원을 맡았다. 1927년 11월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의 영어학교 교사를 사임하였다. 1928년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회장을 맡아 대한인국민회 카르데나스지방회와의 분쟁을 해결하였다. 1930년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의 학무원으로 선출되었고, 1932년에는 대의원이 되었다. 1934년 12월 2일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신구 임원 교체식에서, ‘가화만사성’이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하였다. 1943년 12월 24일 양춘명은 마탄사스 한인감리교회에서 전도사의 자격으로 성탄절 예배를 하였다. 1944년 10월 19일 마탄사스에서 사망하였다.
2020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양춘명의 공적을 기리어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