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李炳浩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멕시코 유카탄주 쿠바 마탄사스주 마탄사스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출생 시기/일시 | 1916년 1월 13일 |
|---|---|
| 활동 시기/일시 | 1921년 3월 |
| 활동 시기/일시 | 1941년 |
| 추모 시기/일시 | 2018년 |
| 출생지 | 멕시코 유카탄주 |
| 거주|이주지 | 멕시코 유카탄주 |
| 거주|이주지 | 쿠바 마탄사스주 마탄사스 |
| 활동지 | 쿠바 마탄사스주 마탄사스 |
| 원어 주소 | Yucatán, México|Matanzas, Provincia de Matanzas, Cuba |
| 성격 | 독립운동가 |
| 성별 | 남 |
| 대표 경력 |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서기 |
멕시코에서 태어나 1921년 3월 쿠바로 이주한 후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서기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이병호(李炳浩)[1916~1997]는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대한인국민회 마탄사스지방회] 구제원과 서기, 재큐한족단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35년부터 1945년까지 의무금, 인구세, 3.1금, 국민 부담금, 광복군 후원금, 독립금 등의 독립운동 자금을 제공하였다.
아버지는 이승준이고, 어머니는 조씨이다. 부인은 천뢰이고, 남동생은 이거복, 여동생은 이놀라, 막내 동생은 이항복이다. 이병호의 아버지 이승준은 1924년부터 1934년까지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구제원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로, 2011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이병호는 1916년 1월 13일 멕시코 유카탄주 지역에서 태어났다. 이병호는 1921년 3월 부모님과 함께 쿠바 마탄사스주로 이주하였다. 1934년 8월 29일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국치 기념식에서 연설을 하였고, 10월 10일 마탄사스 농장주가 한인촌을 심방할 당시 춤을 추며 접대를 하였다. 1934년 12월 2일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신구 임원 이취임식에서 인접위원을 맡았다. 1935년 1월 의무금 1원 50전을 냈고, 12월 31일 망년회에서 광복 사업에 대한 연설을 하였다. 1935년 인구세 1원을 냈고, 12월 30일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망년회에서 신구영신 덕담을 하였다.
1936년 이병호는 2.1국민회 창립식에서 ‘국민회 발전책’이라는 주제로 연설을 하였다. 그해 3월 10일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청년부를 정식으로 조직하였는데, 당시 이병호는 남성 반장에 임명되어 같은 해 4월 3일 제1회 동화회에서 「앵무새 이야기」를 하였다. 1936년 5월 1일 순국선현추도회에서 연설을 하였으며, 그해 10월 마탄사스 저금회 수정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36년 8월 7일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청년부 제7회 동화회에서 「소나무」 이야기를 하였고, 10월 23일 제11차 동화회에서 「가난한 사람의 자선심」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1937년도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수전위원으로 선출되었고, 같은 해 2월 10일 음력 송구영신회에서 감상을 말하였고,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청년부가 주관하는 제1주년 기념식에서 ‘금후발전책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하였다.
1939년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구제부 위원을 맡았고, 그해 12월 3일 지방회 사무 진행에 대한 공로로 포상금을 받았다. 1940년 6월 광복군 후원금 50전을 냈고, 같은 해 7월에는 광복군 후원금 1원을 냈다. 1941년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서기로 선출되었고, 8월 14일에는 중국항공연합회에 참가하여 한·중 양 민족의 합작에 노력하였다. 1942년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서기로 선임되었다. 1943년 2월 1일 침략국 타도에 앞장서는 『오늘』 신문 사장 에스갈란태의 환영회에 참석하였다.
1943년 4월 4일 이병호는 정식으로 설립된 재큐한족단의 위원으로 선임되었다. 쿠바 독립 제41주년 기념일인 1943년 6월 17일 아바나에서 개최된 기념 행렬에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대표로 한국 국기와 쿠바 국기를 들고 참가하였고, 그해 8월 7일 공산당 총회장 겸 쿠바 정부 무임대신 마리넬로의 환영 오찬회에도 참가하였다. 1943년에 이어 1944년에도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서기로 선출되었고, 1945년에는 대표원으로 선임되었다. 1997년 3월 4일 사망하였다.
이병호는 1935년부터 1945년까지 의무금, 인구세, 3.1금, 국민부담금, 광복군 후원금, 독립금 등 독립운동 자금을 제공하였다.
2018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이병호의 공적을 기리어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