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李仁相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시 쿠바 아바나시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출생 시기/일시 | 1895년 1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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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동 시기/일시 | 1905년 |
| 활동 시기/일시 | 1921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7년 1월 17일 |
| 추모 시기/일시 | 2015년 |
| 출생지 | 평안남도 강계군 향교동 |
| 거주|이주지 | 멕시코 유카탄주 |
| 거주|이주지 | 쿠바 아바나시 |
| 활동지 |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시 |
| 활동지 | 쿠바 아바나시 |
| 원어 주소 | Mérida, Yucatán, México|La Habana, Cuba |
| 성격 | 독립운동가 |
| 성별 | 남 |
| 대표 경력 | 대한인국민회 아바나지방회 집행위원장|재큐한족단 부단장 |
1905년 멕시코로 건너가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에서 활동하다 쿠바 대한인국민회 아바나지방회 집행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이인상(李仁相)[1895~?]은 대한인국민회 아바나지방회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였으며, 재큐한족단을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선전하고 재류 동포들의 안전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원래 이름은 이병헌이었으나 1918년 이인상으로 개명하였다.
이인상의 숙부는 이해영[이청룡]이다. 부인은 이오레리아이며, 형은 이윤상(李允相), 이명상(李明相), 이경상(李敬相)이다.
이인상은 1895년(고종 32) 1월 22일 평안남도 강계군 향교동에서 태어났다. 1905년(고종 42) 멕시코 유카탄주로 노동 이민을 갔다. 1912년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에 참여하였고, 1919년 욕각지방경찰소 서기로 활동하였다. 1919년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의 구제원에 선임되었고, 1921년에는 외교원을 맡았다.
숙부 이해영이 쿠바 이민국장 및 농장주들과 협의하여 한인 약 400명의 이주를 계획하였다. 이인상은 이해영을 도와 멕시코 한인 95명을 모았고, 1921년 3월 6일 총 274명이 쿠바로 갔다. 이때 이인상도 쿠바 아바나시로 이주하였으며, 1925년 1월 이흥식의 딸 이오레리아와 결혼을 하였다.
1937년 1월 17일 쿠바 아바나에서 대한인국민회 아바나지방회가 설립되었는데, 이인상은 집행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1938년 2월 1일 대한인국민회 아바나지방회가 거행한 대한인국민회 창립 기념식에서 이인상이 주석을 맡았다. 1938년 대한인국민회 아바나지방회 총무를 맡았고, 같은 해 8월 7일 대한여자애국단 아바나지부 설립 당시 협찬위원이 되었다. 1939년 대한인국민회 아바나지방회 총무로 선임되었으며, 아바나 재류 중국인과 한중합작연맹회를 조직하고 총무를 맡았다. 1940년 대한인국민회 아바나지방회 대표원이 되었고, 대한여자애국단 아바나지부 협찬위원을 맡았다.
1941년 대한인국민회 아바나지방회 집행위원 겸 선전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42년 대한인국민회 아바나지방회에서는 이인상을 비롯하여 이종헌·서병학 3인을 선전위원으로 두고 쿠바 관청과 교섭을 담당하게 하였다. 재큐한족단은 아바나 지방정부의 후원하에 1943년 4월 4일 정식 창립하여 쿠바 한인 사회를 대표하고 항일 투쟁 의지를 대외에 천명하는 단체가 되었다. 재큐한족단은 그해 4월 18일 정식으로 임원의 취임식을 가졌는데, 단장은 대한인국민회 아바나지방회 집행위원장 이종헌, 부단장은 이인상이 맡았다. 이인상은 1912년부터 1942년까지 의무금, 광복군 후원금, 독립금 등 독립운동 자금을 후원하였다.
2015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이인상의 공적을 기리어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