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扈根德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멕시코 유카탄주 멕시코 타바스코주 쿠바 마탄사스주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출생 시기/일시 | 1889년 2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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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동 시기/일시 | 1905년 5월 |
| 활동 시기/일시 | 1921년 3월 |
| 활동 시기/일시 | 1926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4년 |
| 추모 시기/일시 | 2011년 |
| 출생지 | 서울특별시 |
| 거주|이주지 | 멕시코 유카탄주 |
| 활동지 | 멕시코 유카탄주 |
| 활동지 | 멕시코 타바스코주 |
| 활동지 | 쿠바 마탄사스주 |
| 원어 주소 | Mérida, Yucatán|Tabasco, México|Provincia de Matanzas, Cuba |
| 성격 | 독립운동가 |
| 성별 | 남 |
| 대표 경력 | 대한인국민회 카르데나스지방회 부회장 |
1905년 5월 멕시코로 건너가 활동하다 쿠바로 재이주하여 대한인국민회 카르데나스지방회 부회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호근덕(扈根德)[1889~?]은 1911년 대한인국민회 신한동지방회 사찰, 1921년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대한인국민회 마탄사스지방회] 구제원·재무, 1924년 대한인국민회 카르데나스지방회 법무원, 1926년 대한인국민회 카르데나스지방회 부회장, 1928년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구제원, 1932년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학무원·재무, 1934년 민성국어학교 교장 및 간사, 1941년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재무, 1942년 특연금 수전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의무금, 인구세, 3.1기념금, 광복군 후원금, 광주학생운동 후원금, 독립금 등 각종 독립운동 자금을 냈다.
호근덕은 1889년(고종 26) 2월 10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1905년(고종 42) 5월 멕시코 유카탄주로 노동 이민을 갔다. 노동 계약 기간이 끝난 유카탄주 지역 한인들은 1910년(순종 4) 12월 타바스코주(Tabasco州)로 이주하였고, 1911년 대한인국민회 신한동지방회를 설립하였다. 호근덕은 1911년 3월 대한인국민회 신한동지방회 사찰로 선정되었다. 이후 타바스코주 지역이 수재로 인하여 살기가 힘들어지자 호근덕은 유카탄주로 돌아왔고, 1917년 8월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비시야경찰소 법무원으로 활동하였다.
1921년 3월 호근덕은 쿠바 마탄사스주 마탄사스로 재이주를 하고, 그해 10월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구제원에 선임되었다. 1922년에는 재무를 맡아 활동하였다. 1924년 7월 마탄사스주 카르데나스에서 결성되어 활동하던 대한인국민회 카르데나스지방회 법무원이 되었고, 그해 8월 29일 국치 기념일에 ‘장래 독립’이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하였다. 1925년 대한인국민회 카르데나스지방회 서기 겸 학무원에 선정되었고, 인구세 수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6년 대한인국민회 카르데나스지방회 부회장에 선출되었고, 같은 해 2월 1일 대한인국민회 창립 17주년 기념식에서 ‘국민회 17년 역사’를 진술하였다. 1926년 8월 29일 국치 기념일에는 ‘우리의 장래’라는 주제로 연설을 하였다.
1929년 호근덕은 대한인국민회 카르데나스지방회 구제원에 선임되었으나 마탄사스로 이주하였기에 사임하였다. 1929년 8월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구제원에 임명되었고, 1932년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학무원, 1933년 3월 민성국어학교 학부형회 재무가 되었다. 1934년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평의원으로 활동하였고, 그해 2월 1일 대한인국민회 창립 기념식에서 축사를 하였다. 1934년 민성국어학교 교장 겸 간사를 맡아 6월 16일 학생들의 시험식을 거행하였다. 1936년 민성국어학교 서기 겸 재무에 선정되었고, 3.1절 기념식에서 ‘금후 방침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하였다. 1941년도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재무로 선임되었고, 1942년 3월 특연금 수전위원으로 선정되었다.
호근덕은 의무금, 인구세, 3.1기념금, 광복군 후원금, 대일전선동맹 특연금, 광주학생운동 후원금, 독립금, 국민 부담금 등 각종 독립운동 자금을 냈다.
2011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호근덕의 공적을 기리어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