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李世昌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시 쿠바 마탄사스주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출생 시기/일시 | 1973년 12월 29일 |
|---|---|
| 활동 시기/일시 | 1905년 5월 |
| 활동 시기/일시 | 1917년 |
| 활동 시기/일시 | 1921년 3월 |
| 활동 시기/일시 | 1926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4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5년 |
| 추모 시기/일시 | 2011년 |
| 출생지 | 서울특별시 중구 입정동 |
| 거주|이주지 | 멕시코 유카탄주 |
| 활동지 |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시 |
| 활동지 | 쿠바 마탄사스주 |
| 원어 주소 | Mérida, Yucatán, México|Provincia de Matanzas, Cuba |
| 성격 | 독립 운동가 |
| 성별 | 남 |
| 대표 경력 |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회장 |
1905년 5월 멕시코로 건너가 활동하다 쿠바의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회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이세창(李世昌)은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대한인국민회 마탄사스지방회]에서 회장과 집행위원장 등으로 활동하였다. 의무금, 인구세, 국민 부담금, 대일전선통일 의연금, 3.1기념금, 광복군 후원금, 독립금 등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다. 원래 이름은 ‘이수근’인데 1916년 8월 ‘이세창’으로 개명하였다. 알폰소 리(Alfonso Lee)라고도 불렀다.
아들은 이재희이다.
이세창은 1873년(고종 10) 12월 29일 서울 남부(南部) 입정동(笠井洞)[현 서울특별시 중구 입정동]에서 태어났다. 1905년(고종 42) 5월 멕시코 유카탄주로 노동 이민을 갔다. 1917년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부회장에 선출되었다. 그해 메리다 해동학교 유지 동맹금으로 1원을 냈고 가옥채 3원을 냈다. 1919년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법무원에 선임되었다.
1921년 3월 이세창은 쿠바 마탄사스주 마탄사스로 이주하였으며, 1923년 2월 1일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의 국민회 창립 기념식에서 ‘국민회 역사’에 대하여 진술하였다. 같은 해 3.1절을 기념하여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에서는 대대적인 선전 행렬을 하였는데, 경축식에서 이세창이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설명하였다. 이세창은 1923년 6월 14일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설립 제3주년 기념식에서 축사를 하였고, 같은 해 7월 8일 대한인국민회 마탄사스지방회 통상회의에서 재정조사위원으로 조사 보고를 하였다. 또 9월 16일에는 민성국어학교 개학식에서 찬성원이 되었다. 1924년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대의원으로 선출되었고, 2.1경축식에서 대한인국민회의 역사에 대해 진술하였다.
1924년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의 전반기 재정수지조사위원으로 선정되었고, 1925년에는 평의원에 선출되었다. 1925년 2월 민성국어학교 교장에 선임되었고, 마탄사스 지방 상례회의 총무로 선임되었다. 1925년 8월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회장 박덕렵과 함께 쿠바 지역 한인 사회를 순방하였고, 11월 28일 박은식 선생 추도식에서 추도사를 하였다. 1926년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회장으로 선출된 이세창은 실업을 해소하고 취리를 위하여 마탄사스 실업회사를 설립하여 총무에 임명되었다. 1927년도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대의원에 선임되었고, 3.1절 경축식에서 ‘민국 8년 약사’를 진술하였다. 1928년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의 학무원으로 선정되었으며, 1929년에는 재무, 1930년에는 법무원에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이후 이세창은 마탄사스주의 카르데나스로 이주하여 1930년 1월 26일 카르데나스 국어학교 교사로 임명되었다. 1930년 3월 23일 카르데나스에서 설립된 종리원의 법도집에 임명되었고, 같은 해 4월 14일 대한인국민회 카르데나스지방회에서 개설한 청년야학에서 교사로 활동하였다. 1931년 3월 10일 카르데나스에서는 청년토론회를 조직하고 야학을 개설하였는데, 여기에서도 이세창은 교사로서 역사와 산술을 가르쳤다. 1931년 5월 10일 종리원 원장으로 선출되었다.
1933년 이세창은 다시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대의원에 선임되었다. 그해 민성국어학교 학부형회에서 이세창을 교사로 초빙하였다. 1934년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회장으로 선출되었고, 1935년에도 회장에 선임되었다. 1936년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대의원에 선출되었고, 1937년에는 구제부 위원이 되었다. 1938년 집행위원장에 선출되었는데, 그해 2.1기념식에서 집행위원장으로 기념식 사회를 담당하였다. 1940년에 다시 집행위원장에 선출되었고, 1941년에는 교육위원으로 선임되었다.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도발한 이후 쿠바 한인들이 임시 외교 기관을 설립하였는데, 이세창은 마탄사스 대표로 선정되었다. 1944년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의 대표원으로 선출되었고, 1945년에는 교육위원으로 선임되었다.
이세창은 1917년부터 1945년까지 의무금, 인구세, 국민 부담금, 대일 전선 통일 의연금, 3.1기념금, 광복군 후원금, 독립금 등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다.
2011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이세창의 공적을 기리어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