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金允元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시 멕시코 베라크루스주 헤수스 카란사 와하케뇨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출생 시기/일시 | 187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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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동 시기/일시 | 1905년 |
| 활동 시기/일시 | 1911년 |
| 활동 시기/일시 | 1912년 |
| 몰년 시기/일시 | 1920년 |
| 추모 시기/일시 | 2016년 |
| 출생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
| 거주|이주지 |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시 |
| 활동지 |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시 |
| 활동지 | 멕시코 베라크루스주 헤수스 카란사 와하케뇨 |
| 원어 주소 | Mérida, Yucatán, México|Oaxaqueña, Jesus Carranza, Veracruz, México |
| 성격 | 독립운동가 |
| 성별 | 남 |
| 대표 경력 |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부회장 |
1905년 5월 멕시코로 건너가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부회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김윤원(金允元)[1877~1920]은 멕시코 에네켄 농장 이민자로서 대한인국민회의 지방회 활동은 물론 독립금 후원과 모금에 적극적으로 임하였다.
2022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동포 인구 등록표」가 발굴되면서 김윤원의 슬하에 네 명의 아들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멕시코의 대한인국민회 프론테라지방회 회장[1918~1921], 쿠바의 대한인국민회 마나티지방회 회장, 대한인국민회 마탄사스지방회 회장[1922], 대한인국민회 카르데나스지방회 회장[1922~1930] 등을 역임한 김세원[1870~1949]이 형이다.
경기도 강화[현 인천광역시 강화군] 출신인 김윤원은 1905년(고종 42) 5월 형 김세원과 함께 멕시코 유카탄주로 노동 이민을 갔다.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관 옆에 여관을 세워 오고 가는 한인 동포들에게 숙식을 제공한 특이한 경력이 있으며, 장인환·전명운 의거 의연금을 출연[1908]하였다. 1909년(순종 3) 친목회 총무를 시작으로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창립 당시 총무 겸 재무이사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같은 해 『신한민보』 지사원을 하였다. 1911년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부회장으로 선출되었다.
1912년 김윤원은 대한인국민회 오학기나지방회가 세운 일신학교 교장을 역임하였다. 1915년에는 대한인국민회 오학기나지방회 평의원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김윤원은 대한인국민회 총회에서 독립의연 수전위원으로 소노라주 엘 티그레(El Tigre)에 파견하여 활동하였다.
『신한민보』는 1909년 4월 14일 자에 김윤원이 기고한 「자유생활은 합심단체에 있음이라」를 실었다.
김윤원의 묘소와 관련한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데, 이 때문에 2018년부터 국가보훈처[현 국가보훈부]가 추진하고 있는 독립운동가 묘소 찾기의 대상자이기도 하다.
2016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김윤원의 공적을 기리어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으나 후손에게 대통령 표창이 전달되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