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덕윤

한자 孔德允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시  멕시코 베라크루스주 헤수스 카란사 와하케뇨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905년
활동 시기/일시 1925년
추모 시기/일시 2017년
거주|이주지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시
활동지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시
활동지 멕시코 베라크루스주 헤수스 카란사 와하케뇨
원어 주소 Mérida, Yucatán, México|Oaxaqueña, Jesus Carranza, Veracruz, México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회장
정의

1905년 5월 멕시코로 건너가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회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개설

공덕윤(孔德允)[1890~1977]은 멕시코 이민 1세대로서 대한인국민회 오학기나지방회의 일신학교 찬성원,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의무금, 인구세, 광복군 후원금, 독립금, 국기 기념금, 대일 선전 기념금, 순국선열 기념금, 각종 구제금 등을 성실히 납부하는 등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지속적으로 후원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가계

자녀들로 큰아들 안셀모 콩 살라스(Anselmo Cong Salas), 둘째 아들 데이비드 콩 살라스(David Cong Salas)[1930~?], 셋째 아들 호세 헤버 콩 살라스(Jose Heber Cong Salas)[1932~?]와 큰딸 사라 노에미 콩 살라스(Sara Noemi Cong Salas)[1922~2017], 둘째 딸 레베카 콩 살라스(Rebeca Cong Salas)[1926~2020], 셋째 딸 엘리사 콩 살라스(Elisa Cong Salas)[1935~?] 등 3남 3녀가 있다. 이들 중 둘째 아들 데이비드 콩 살라스와 그의 자녀들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살고 있다.

활동 사항

공덕윤은 1905년(고종 42)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로 이민을 가서 에네켄 농장에서 노동자로 일하였다. 1909년(순종 3) 노동 계약 기간이 끝나 자유를 얻은 공덕윤은 1912년 베라크루스주의 와하케뇨 지역 에네켄 농장에서 노동자를 모집하자 그곳으로 이주하였다. 그해 6월 대한인국민회 오학기나지방회 신입 회원에 가입하고 7월에는 일신학교 찬성원으로 의연금을 후원하였다. 공덕윤은 1917년 6월 대한인국민회 오학기나지방회가 철수할 때 메리다로 다시 돌아온 것으로 추정된다.

1925년 공덕윤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회장으로 대한인국민회 창립 기념식과 국치 기념식 등을 주관하였으며, 1926년 1월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재무부로부터 독립운동 후원에 감사하는 감사장을 받았다. 또한 안식교 전도사장으로 선교 활동에도 힘을 쏟았으며, 1937년 5월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가 주최하는 순국선열 추도식에서 기도를 맡기도 하였다. 한인 동포들의 대소사에 적극 참석하였으며, 1945년 광복이 되던 해에도 독립금, 군사 운동금, 인구세, 국민회 의무금, 『신한민보』 대금 등을 납부하는 모범을 보였다.

묘소

공덕윤의 묘소와 관련한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데, 이 때문에 2018년부터 국가보훈처[현 국가보훈부]가 추진하고 있는 독립운동가 묘소 찾기의 대상자이기도 하다.

상훈과 추모

2017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공덕윤의 공적을 기리어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으며, 2021년 9월 주로스앤젤레스 대한민국 총영사관을 통해 둘째 아들 데이비드 콩 살라스에게 표창을 전달하였다.

참고문헌
  • 「[보도자료] 독립유공자(공덕윤) 후손에게 대통령 표창 전수」(주로스엔젤레스 대한민국 총영사관, 2021. 9. 17.)
  • 공훈전자사료관_독립유공자 공적정보(https://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List.do?goTocode=2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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