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安昌浩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멕시코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출생 시기/일시 | 1876년 11월 9일 |
|---|---|
| 활동 시기/일시 | 1917년 10월 |
| 몰년 시기/일시 | 1938년 3월 10일 |
| 추모 시기/일시 | 1962년 |
| 출생지 | 평안남도 강서군 초리면 칠리, 봉상도 |
| 활동지 | 멕시코 |
| 묘소 |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산대로45길 20[신사동 649-9] 도산공원 |
| 원어 주소 | México |
| 영문 주소 | Mexico |
| 성격 | 독립운동가 |
| 성별 | 남 |
| 대표 경력 |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장|흥사단 단장|대한민국임시정부 내무총장|국무총리 대리 |
1917년 10월부터 1918년 8월까지 멕시코에 머물며 활동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순흥(順興), 호는 도산(島山)이다. 아버지는 안흥국(安興國)이고, 어머니의 성씨는 황이다. 부인은 이혜련이고, 큰아들은 안필립, 큰딸은 안수산, 둘째 아들은 안필선, 셋째 아들은 안필영[랄프], 둘째 딸은 안수선이다.
안창호는 멕시코 한인들의 초빙으로 10개월가량 멕시코 전역을 순행하였다. 멕시코 순방을 마친 안창호는 1918년 5월 26일 유카탄주 메리다 지역 한인들의 전별을 받고 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멕시코시티를 방문하였다. 미국 입국 허가를 얻기 위해 멕시코 중서부 할리스코주(Jalisco州)의 주도이며 멕시코 제2의 도시인 과달라하라로 갔다. 안창호는 과달라하라에 있는 미국 영사관에 가서 입국 허가를 신청하고 호텔 프란세스에 머물면서 기다렸다. 과달라하라의 미국 영사관에서는 1918년 6월 29일 자로 미국에 들어가려면 국경 지대인 애리조나주(Arizona州) 노갈레스에 있는 미국 영사와 협의하라고 편지를 보냈다. 안창호는 1918년 8월 27일 노갈레스에 있는 이민국에 접수하고 입국이 허가되어 미국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1962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안창호의 공적을 기리어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2016년 독립기념관에서 안창호가 미국 귀환 길에 머문 과달라하라의 호텔 프란세스 로비에 기념 동판을 설치하였다. 기념 동판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멕시코 과달라하라 프란세스 호텔은 1910년대 해외 한인의 대표 기관인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장 안창호가 1918년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 숙박한 곳이다. 안창호 선생은 해외 한인 사회의 단합과 독립운동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멕시코 전역을 10개월 동안 순행하고 미국으로 귀환하는 과정에서 이 호텔에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