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韓宗源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시 멕시코 멕시코시티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출생 시기/일시 | 1898년 |
|---|---|
| 활동 시기/일시 | 1905년 5월 |
| 활동 시기/일시 | 1922년 2월 |
| 활동 시기/일시 | 1955년 |
| 활동 시기/일시 | 1975년 |
| 추모 시기/일시 | 2021년 |
| 출생지 | 서울특별시 |
| 거주|이주지 | 멕시코 유카탄주 |
| 학교|수학지 | 멕시코 멕시코시티 |
| 활동지 |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시 |
| 활동지 | 멕시코 멕시코시티 |
| 활동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로 107[이문동 270-1] |
| 원어 주소 | Mérida, Yucatán, México|Ciudad de México, México |
| 성격 | 독립운동가 |
| 성별 | 남 |
| 대표 경력 |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외교원|한국외국어대학교 서반아어학과 교수 |
1905년 5월 멕시코로 건너가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외교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한종원(韓宗源)[1898~?]은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외교원과 학무원, 대한인국민회 묵경지방회 선전위원과 교섭위원, 외교위원으로 멕시코 현지 언론에 한국 독립운동을 선전하고 멕시코 정부와 멕시코 한인의 안전을 교섭하였다.
아버지는 한성순(韓聖淳)이고, 여동생은 한마리아이다.
한종원은 1898년(고종 35) 서울에서 태어났다. 7세 때인 1905년(고종 42) 5월 부모님을 따라 멕시코 유카탄주로 이민을 갔다. 아버지 한성순은 훈련원 장교 출신으로 유카탄주 메리다에서 이근영 등이 세운 숭무학교에서 교관을 지냈다. 한종원은 어릴 때 유카탄주 이친캅(Itzincab) 농장의 진성학교에 다녔고, 1922년 2월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외교원으로 임명되었다.
1927년 한종원은 멕시코시티에서 조직된 대한인국민회 묵경지방회 외교원 겸 학무원으로 선임되었다. 1930년에는 멕시코시티에서 조직된 한인자성단에 참여하였다. 한인자성단에서는 1931년 11월부터 독립운동을 후원하기 위한 주례금 모집을 결의하였는데, 한종원도 주례금 동맹자로 참여하여 매주 25전을 냈다. 1939년 유카탄주 메리다로 돌아와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교육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940년 3·1절 기념식에서 한국어와 스페인어로 연설을 하였다. 1940년 10월 27일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에서 광복군 성립 축하식을 거행하였는데, 한종원이 스페인어로 광복군의 성립에 대해 연설을 하였다. 1941년 1월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교육위원에 선출되었으나, 그해 5월에 다시 멕시코시티로 이주하였다.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자 한종원은 1941년 12월 20일 멕시코시티에서 발간되는 세 종류의 일간지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대일 선전과 멕시코 한인의 입장 및 독립운동과 관련한 기사를 게재하였다. 1942년 1월 초순 『노베다드(Novedad)』 신문에 「재묵한인은 진 묵국의 은혜를 갚자」라는 한종원의 글이 게재되어, 멕시코 국민들의 동정을 많이 얻었다. 1942년 7월 17일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에서는 한종원에게 멕시코 정부와 교섭할 수 있는 위임장을 발급하였다. 1942년 10월 한종원은 멕시코 주재 중국 공사와 면담을 하였으며, 멕시코 국무경과 외교부장을 방문하여 한인들의 안전 보장에 관해 논의하였다. 1918년부터 1940년까지 의무금, 1929년부터 1940년까지 인구세, 1940~1941년 광복군 후원금, 1942년 독립금을 납부하였다.
광복 후인 1955년 한종원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서반아어학과 교수로 임명되어 재직하였으며, 1975년 퇴직하였다.
2021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한종원의 공적을 기리어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