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孔仁德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시 멕시코 타바스코주 센틀라시 프론테라 멕시코 베라크루스주 코아트사코알코스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출생 시기/일시 | 1879년 2월 28일 |
|---|---|
| 활동 시기/일시 | 1905년 5월 |
| 활동 시기/일시 | 1923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9년 |
| 추모 시기/일시 | 2015년 |
| 출생지 | 경기도 용인시 |
| 거주|이주지 | 멕시코 유카탄주 |
| 활동지 |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시 |
| 활동지 | 멕시코 타바스코주 센틀라시 프론테라 |
| 활동지 | 멕시코 베라크루스주 코아트사코알코스 |
| 원어 주소 | Mérida, Yucatán, México|Centla Municipality, Tabasco, México|Coatzacoalcos, Veracruz, México |
| 성격 | 독립운동가 |
| 성별 | 남 |
| 대표 경력 | 대한인국민회 프론테라지방회 회장 |
1905년 5월 멕시코로 건너가 대한인국민회 프론테라지방회 회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공인덕(孔仁德)[1879~?]은 1923년부터 1927년까지 대한인국민회 프론테라지방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1939년과 1941년 대한인국민회 코앗사코알코스지방회 집행위원장을 맡아 독립 선전과 동포를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시몬 콩 리(Simon Kong Lee)로도 불렀다.
부인은 에스페란사 윤(Esperanza Yung)이고, 아들은 에인절 콩 윤(angel Kong Yung), 외손자는 후안 라몬 김 콩(Juan Ramon Kim Kong)이다.
공인덕은 1879년(고종 16) 2월 28일 경기도 용인군 천동[현 경기도 용인시]에서 태어났다. 1905년(고종 42) 5월 멕시코 유카탄주로 노동 이민을 가서 에네켄 농장에서 일하였다. 1909년(순종 3) 5월 계약 노동 기간이 끝나자 에네켄 농장을 떠나 구유 농장에서 일을 하였다.
1910년(순종 4) 4월 공인덕은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평의원으로 선출되었고, 1917년 해동학교 유지동맹원으로 참여하였다. 이후 멕시코의 타바스코주 센틀라시 프론테라로 이주하여 1923년 대한인국민회 프론테라지방회 회장으로 선출되었으며, 1924년 다시 회장으로 선임되었다. 공인덕은 1924년 대한인국민회 창립 15주년 기념 연설에서, “지성으로 국민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날을 정성껏 기념하는 것이 우리 목적한 바 없어진 나라를 다시 회복하고, 잃어버린 자유를 찾아 이어서 한층 올라가 독립을 기념할 날이 멀지 않다 하나이다.”라고 하였다. 1925년 다시 대한인국민회 프론테라지방회 회장으로 선출되었고, 1926년에도 여러 번 사양하였으나 다시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공인덕은 1927년에도 대한인국민회 프론테라지방회 회장을 맡아 각종 행사를 주관하였다.
이후 공인덕은 농사를 지었는데 큰 수해로 인하여 상당한 손해를 입고 멕시코의 베라크루스주 코아트사코알코스로 이거하여 식물 상점을 경영하였다. 1938년 공인덕은 대한인국민회 푸엘토예비지방회의 총무로 선출되었다. 1939년 대한인국민회 푸엘토예비지방회는 대한인국민회 코앗사코알코스지방회로 개칭하였는데, 이 해 공인덕은 집행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1940년에는 대한인국민회 코앗사코알코스지방회의 실업위원, 1941년에는 집행위원장에 선출되었다. 공인덕은 1919년부터 1945년까지 의무금, 인구세, 독립 의연금, 광복군 후원금, 독립금 등 각종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다.
2015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공인덕의 공적을 기리어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