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盧德賢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시 멕시코 베라크루스주 헤수스 카란사 와하케뇨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출생 시기/일시 | 1889년 |
|---|---|
| 활동 시기/일시 | 1905년 |
| 활동 시기/일시 | 1916년 12월 |
| 추모 시기/일시 | 2022년 |
| 출생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동 |
| 거주|이주지 | 멕시코 유카탄주 |
| 활동지 |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시 |
| 활동지 | 멕시코 베라크루스주 헤수스 카란사 와하케뇨 |
| 원어 주소 | Mérida, Yucatán, México|Oaxaqueña, Jesus Carranza, Veracruz, México |
| 성격 | 독립운동가 |
| 성별 | 남 |
| 대표 경력 | 대한인국민회 오학기나지방회 서기 |
1905년 5월 멕시코로 건너와 대한인국민회 오학기나지방회 서기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노덕현(盧德賢)은 1910년(순종 4)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회원으로 가입하여 활동하다 1916년 대한인국민회 오학기나지방회의 법무원과 서기 등을 맡아 활동하였고, 1919년 푸에르토 멕시코 지방 경찰소 소장, 1928년 대한인국민회 푸엘토예비지방회 법무원, 1932~1933년 대한인국민회 푸엘토예비지방회 외교원, 1940년 대한인국민회 코앗사코알코스지방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대한인국민회 푸엘토예비지방회는 대한인국민회 푸엘도예비지방회로도 불렸으며, 1939년 대한인국민회 코앗사코알코스지방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어머니는 정마리오이고, 아들은 네를노이다.
노덕현은 1889년(고종 26)경 서울 사직동(社稷洞)[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동]에서 태어났다. 1905년(고종 42) 멕시코 유카탄주로 노동 이민을 갔다. 1910년 3월 13일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에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베라크루스주 헤수스 카란사 와하케뇨(La Oaxaqueña)[오학기나] 지역으로 이주한 노덕현은 1916년 대한인국민회 오학기나지방회를 코아트사코알코스로 옮긴 후 법무원에 선정되었고, 같은 해 12월 대한인국민회 오학기나지방회 서기로 임명되었다. 1919년 1월 푸에르토 멕시코 지방의 경찰소 소장으로 선출되었으며, 1928년 대한인국민회 푸엘토예비지방회 법무원으로 선정되었다. 1932년 대한인국민회 푸엘토예비지방회 외교원으로 선임되었고, 그해 11월 27일 이봉창 의사 추도식에서 ‘공동생활을 하자’는 내용으로 연설을 하였다. 1933년도 대한인국민회 푸엘토지방회 외교원에 선출되었으며, 1936년에는 총무부 부원으로 활동하였다. 1940년에는 대한인국민회 코앗사코알코스지방회 회원으로 활약하였다.
노덕현은 1917년부터 1943년까지 의무금, 1925년부터 1944년까지 인구세, 1933년부터 1944년까지 3.1금, 1937년 독립 전쟁 후원금, 1941년부터 1944년까지 독립금 등 각종 독립운동 자금을 납부하였다.
2022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노덕현의 공적을 기리어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