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盧炯達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시 멕시코 베라크루스주 헤수스 카란사 와하케뇨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출생 시기/일시 | 1869년 |
|---|---|
| 활동 시기/일시 | 1905년 5월 |
| 활동 시기/일시 | 1915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0년 |
| 몰년 시기/일시 | 1932년 11월 20일 |
| 추모 시기/일시 | 2021년 |
| 출생지 | 경기도 양주시 마전동 |
| 거주|이주지 | 멕시코 유카탄주 |
| 활동지 |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시 |
| 활동지 | 멕시코 베라크루스주 헤수스 카란사 와하케뇨 |
| 원어 주소 | Mérida, Yucatán, México|Oaxaqueña, Jesus Carranza, Veracruz, México |
| 성격 | 독립운동가 |
| 성별 | 남 |
| 대표 경력 | 대한인국민회 오학기나지방회 부회장|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부회장 |
1905년 5월 멕시코로 건너가 대한인국민회 오학기나지방회 부회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노형달(盧炯達)[1869~1932]은 1911년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구제원, 1915년 대한인국민회 오학기나지방회 부회장으로 활동하였고, 1930년부터 1932년까지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부회장 등으로 선임되었다. 대한인국민회 의무금, 인구세, 후원금 등 독립운동 자금을 제공하였다.
아들은 노학동(盧學東)이다.
노형달(盧炯達)은 1869년(고종 6) 경기도 양주군 주암면 마전리[현 경기도 양주시 마전동]에서 태어났다. 1905년(고종 42) 5월 멕시코 유카탄주로 노동 이민을 가서 에네켄 농장에서 일하였다. 1911년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구제원으로 활동하던 노형달은 베라크루스주 헤수스 카란사 와하케뇨로 이주하였다.
노형달 등 와하케뇨로 이주한 한인들은 1911년 12월 17일 대한인국민회 오학기나지방회를 신설하였는데, 노형달은 구제원에 임명되었으나 다음 해 6월에 사면하였다. 1914년 대한인국민회 오학기나지방회의 평의회 평의원에 선출되었고, 1915년 부회장에 선임되었다. 다시 유카탄주 메리다로 돌아온 노형달은 1915년 11월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법무원에 임명되었다. 1924년에는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학무원에 선임되었다. 1930~1932년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부회장으로 활동하였다. 1931년 12월 7일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인구조사위원으로 임명되었다.
노형달은 28년간 한인 교회의 의무 전도사로 활약하였으며 1914년부터 1932년까지 여러 차례 의무금, 인구세, 구제금, 후원금, 이충무공 유적 보존금 등을 납부하였다. 1932년 11월 20일 사망하였다.
2021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노형달의 공적을 기리어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