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성

한자 金泳成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66년 1월 9일
활동 시기/일시 1905년 5월
활동 시기/일시 1929년
추모 시기/일시 2020년
출생지 평양시
거주|이주지 멕시코 유카탄주
활동지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시
원어 주소 Mérida, Yucatán, México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학무원
정의

1905년 5월 멕시코로 건너가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학무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개설

김영성(金泳成)은 1925년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대의원, 1929년과 1933~1936년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학무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1912년부터 1945년까지 의무금, 인구세, 광복군 후원금, 3.1 성금, 독립금 등 여러 종류의 독립운동 자금을 제공하였다. 김영성(金永成)으로도 쓴다.

가계

부인은 박가르엘라이고, 아들은 김경욱·김명욱, 딸은 김귀희[임천택의 부인, 헤르니모 임의 어머니]이다.

활동 사항

김영성은 1866년(고종 3) 1월 9일 평안남도 평양부 외천면 2동[현 평양시 지역]에서 태어났다. 1905년(고종 42) 5월 멕시코 유카탄주로 이민을 가서 에네켄 농장에서 노동자로 일하였다.

1911년 11월 12일 김영성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에 입회하였고, 1912년 12월 3일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17년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평의원에 선임되었고, 해동학교 유지 동맹금으로 1원을 냈다. 1918년 『신한민보』의 기계채로 18페소를 냈다. 1925년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었고, 1929년에는 학무원으로 선정되었다. 1929년도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3.1절 경축식에서 연설을 하였고, 학무원 겸 인구조사원도 맡았다. 1932년 재만 동포 구제금으로 3원을 냈다.

김영성은 1933년부터 1936년까지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학무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1935년 5월 선현 추도식에서 순국 선현의 역사를 세세히 설명하였다. 1937년 3.1경축식에서는 축사를 하였다. 김영성은 1938년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구제부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그해 5월 1일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창립 기념식에서 연설을 하였고, 8월에는 대한여자애국단 메리다지회가 창단하는 데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1939년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대표원으로 선정되었고, 같은 해 5월 1일 순국 선현 추도식에서 연설을 하였다. 1940년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대표원 겸 수전위원으로 선임이 되었고, 3.1절 경축식의 절차위원을 맡았다. 1941년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대표원에 선출되었고, 그해 9월 7일 독립금 수봉위원으로 선정되었다. 1942년 6월부터 12월까지 독립금 12원을 냈고, 1943년 6월에는 독립금 7원 50전을 냈다.

김영성은 1912년부터 1945년까지 의무금, 인구세, 3.1성금, 광복군 후원금, 독립금 등의 독립운동 자금을 제공하였다.

상훈과 추모

2020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김영성의 공적을 기리어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김영성 재묵동포인구등록」(『미주 국민회 자료집』제5권, 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2005)
  • 김도형, 「멕시코 지역 대한인국민회의 조직과 활동」(『국사관논총』107, 국사편찬위원회, 2005)
  • 「묵국미리다지방회보」(『신한민보』, 1911. 12. 4.)
  • 「메리다지방회」(『신한민보』, 1911. 12. 18.|1917. 3. 15.|1924. 11. 27.|1927. 12. 1.|1928. 11. 22.|1929. 1. 3.|1929. 3. 28.|1929. 12. 19.|1930. 3. 20.|1932. 12. 15.|1933. 11. 23.|1934. 12. 13.|1935. 5. 16.|1935. 11. 21.|1938. 4. 14.|1938. 5. 19.|1939. 3. 2.|1939. 12. 21.|1941. 1. 23.|1941. 9. 25.)
  • 「기계채 청장 의연」(『신한민보』, 1918. 8. 1.)
  • 「묵국 메리다 김영성 씨등 8인의 우리 기계 대한 정성을 느끼오」(『신한민보』, 1918. 8. 1.)
  • 「동맹자 모집」(『신한민보』, 1918. 8. 8.)
  • 「김영성씨의 참상」(『신한민보』, 1923. 2. 15.)
  • 「재만동포구제금」(『신한민보』, 1932. 1. 14.)
  • 「메리다지방회관 건설」(『신한민보』, 1935. 1. 31.)
  • 「메리다」(『신한민보』, 1937. 3. 11.)
  • 「김영성씨의 감사담」(『신한민보』, 1937. 5. 20.)
  • 「메리다 대한여자애국단」(『신한민보』, 1938. 9. 22.)
  • 「각 지방회의 순국선현추도식, 메리다지방회」(『신한민보』, 1939. 5. 18.)
  • 「각 지방회 3.1절 경축」(『신한민보』, 1940. 3. 28.)
  • 「독립금, 메리다지방회」(『신한민보』, 1943. 1. 21.|1943. 6. 3.)
  • 「김명욱씨 별세와 안장」(『신한민보』, 1944.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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