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金大善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시 멕시코 베라크루스주 멕시코 멕시코시티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출생 시기/일시 | 1877년 |
|---|---|
| 활동 시기/일시 | 1905년 5월 |
| 활동 시기/일시 | 1925년 |
| 활동 시기/일시 | 1940년 |
| 추모 시기/일시 | 2014년 |
| 거주|이주지 |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시 |
| 활동지 |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시 |
| 활동지 | 멕시코 베라크루스주 |
| 활동지 | 멕시코 멕시코시티 |
| 원어 주소 | Mérida, Yucatán, México|Veracruz, México|Ciudad de México, México |
| 성격 | 독립운동가 |
| 성별 | 남 |
| 대표 경력 | 대한인국민회 푸엘토예비지방회 회장|대한인국민회 묵경지방회 집행위원장 |
1905년 5월 멕시코로 건너가 푸엘토예비지방회 회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김대선(金大善)은 1917년 멕시코 대한인국민회 오학기나지방회 부회장, 1925년 푸엘토예비지방회[대한인국민회 코앗사코알코스지방회] 회장, 1940년 대한인국민회 묵경지방회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부인은 서마리오이다.
김대선은 1877년(고종 14)경 서울 동관에서 태어났다. 1905년(고종 42) 5월 멕시코 유카탄으로 이민을 왔다. 1909년(순종 3) 5월 9일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창설에 앞장섰고, 평의원에 선출되었다.
김대선은 멕시코의 유카탄주 메리다에서 베라크루스주의 헤수스 카란사 와하케뇨로 이주하였다가 멕시코혁명이 일어나자 다시 코아트사코알코스(Coatzacoalcos)로 이주하였다. 코아트사코알코스에서 김대선은 수천 원의 자본을 모집하여 1915년 7월부터 어업을 시작하였다. 1916년 7월 대한인국민회 오학기나지방회를 코아트사코알코스로 옮기고 부회장에 선출되었고, 코아트사코알코스의 경찰을 겸직하였다. 1919년 1월 푸엘토경찰소의 법무원으로 선임되었고, 1925년 1월 푸엘토예비지방회 회장으로 선출되고 그해 3.1절 경축식을 거행하였으며, 이날 행사에는 외국인 50명이 함께 참석하여 독립 만세를 축하하였다.
푸엘토예비지방회에서 활동하던 김대선은 멕시코시티로 이주하여 1927년 3월 대한인국민회 묵경지방회의 구제원이 되었다. 1928년 1월 대한인국민회 묵경지방회 학무원으로 선출되었고, 그해 7월 4일 실업부원으로 임명되었다. 1929년도에도 실업부원으로 선출되었다. 1930년 2월 대한인국민회 묵경지방회가 해체되자 멕시코시티 한인들은 한인자성단을 결성하였는데, 1931년 한인자성단은 임시정부를 봉대하는 미주한인연합회에 가입하였다. 김대선은 한인자성단에 참여하여 독립운동 주례금 동맹자로 참여하였다.
1940년 3.1절을 맞이하여 대한인국민회 묵경지방회가 다시 복설되었고, 김대선은 대한인국민회 묵경지방회 집행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김대선은 중국에서 한국광복군이 성립된 이후 광복군 후원금으로 123원을 모집하여 보냈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이후 대한인국민회 묵경지방회 집행위원장으로 한인의 안전을 위한 활동을 하였으며, 1942년 의사부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김대선은 의무금, 인구세, 독립의연금, 광복군 후원금 등 각종 독립운동 자금을 냈다.
2014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김대선의 공적을 기리어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