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金聖民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시 멕시코 베라크루스주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활동 시기/일시 | 1905년 5월 |
|---|---|
| 활동 시기/일시 | 1913년 |
| 추모 시기/일시 | 2011년 |
| 거주|이주지 | 멕시코 유카탄주 |
| 활동지 |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시 |
| 활동지 | 멕시코 베라크루스주 |
| 원어 주소 | Mérida, Yucatán, México|Veracruz, México |
| 성격 | 독립운동가 |
| 성별 | 남 |
| 대표 경력 | 대한인국민회 오학기나지방회 회장 |
1905년 5월 멕시코로 건너가 대한인국민회 오학기나지방회 회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김성민(金聖民)은 1913년 대한인국민회 오학기나지방회 회장, 1920년 대한인국민회 산타페지방회 대의원, 1937년 대한인국민회 푸에르토지방회 집행위원장, 1939년 대한인국민회 코앗사코알코스지방회 서기를 역임하였고, 각종 독립운동 자금을 제공하였다.
큰딸은 김보세이고, 큰아들은 김한산, 둘째 아들은 김강산[부인 정태순], 셋째 아들은 김청산이다.
김성민은 1905년(고종 42) 5월 멕시코 유카탄주로 노동 이민을 갔다. 1909년(순종 3) 5월 9일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창립 당시 평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10년(순종 4) 3월쯤 유카탄의 숭무학교(崇武學校) 을반(乙班)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이후 베라크루스주 헤수스 카란사 와하케뇨로 이주하여 1912년 6월 대한인국민회 오학기나지방회 부회장으로 선출되었고, 1913년도 대한인국민회 오학기나지방회 회장을 맡았다.
와하케뇨에서 다시 유카탄주 메리다로 돌아와 1916년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대의원이 되었고, 1917년 1월 해동학교(海東學校) 간사를 맡았다. 1917년 11월부터 1918년 5월까지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법무원으로 활동하였고, 1918년 8월 유카탄 레판(Lepan) 지방의 반도학교(半島學校) 교사가 되었다. 베라크루스주의 산타페 사탕수수 농장으로 이주하여 1920년 6월 10일 대한인국민회 산타페지방회를 설립하고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이후 대한인국민회 푸에르토지방회 집행위원장으로 3.1절 기념식을 거행하였고, 1940년 대한인국민회 코앗사코알코스지방회 서기가 되었다.
김성민은 1909년부터 1945년까지 의무금, 3.1기념금, 독립 의연금, 광복군 후원금, 독립금, 국치 기념금 등 각종 독립운동 자금을 제공하였다.
2011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김성민의 공적을 기리어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