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옥

한자 金相玉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시  멕시코 멕시코시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6년
활동 시기/일시 1905년 5월
활동 시기/일시 1931년
추모 시기/일시 2011년
출생지 경기도 양주군
거주|이주지 멕시코 유카탄주
활동지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시
활동지 멕시코 멕시코시티
원어 주소 Mérida, Yucatán, México|Ciudad de México, México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대한인국민회 묵경지방회 회장
정의

1905년 5월 멕시코로 건너가 대한인국민회 묵경지방회 회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개설

김상옥(金相玉)은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해동학교 동맹원과 진성학교 교감으로 활동하였고, 1931년 대한인국민회 묵경지방회[멕시코시티지방회]의 회장, 1939년 감찰위원이 되었다. 1912년부터 의무금, 인구세, 독립금 등 각종 독립운동 자금을 납부하였다.

가계

김상옥의 부인은 조(趙)이사벨이고, 자녀는 아들 김봉학(金鳳鶴)·김두홍(金斗弘)·김기홍(金基弘) 3남과 딸 세실리아[또는 마리아]·말테나[한국명 이쁜이]·음전이 3녀를 두었다.

활동 사항

김상옥은 1876년(고종 13)쯤 경기도 양주군에서 태어났다. 1905년(고종 42) 5월 멕시코 유카탄으로 노동 이민을 갔다. 1910년(순종 4)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의 산디마스(San Dimas)경찰소 사찰로 임명되었다. 1912년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평의원이 되었고, 1913년 야체(Yazche)지방회 법무원으로 활동하였다. 1916년 11월 6일 개교한 유카탄 진성학교의 교감을 맡았으며, 1917년 해동학교의 동맹원으로 참가하였다. 1919년 옥스타파캅(Oxtapacap)경찰소 소장이 되었다.

이후 김상옥은 멕시코시티로 이주하여 1928년 대한인국민회 묵경지방회 대의원이 되었다. 1931년 대한인국민회 묵경지방회 회장으로 보결되었으나 한인자성단에 들어갔다. 한인자성단이 임시정부를 봉대하는 미주한인연합회에 가입하자 김상옥은 독립운동 주례금 동맹자로 참여하였다. 대한인국민회 묵경지방회와 한인자성단이 합동된 이후 1939년 6월 대한인국민회 묵경지방회 감찰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42년 8월 29일 국기 현기식에서 김상옥은 “조국과 국기를 위하여 무엇이나 아끼고 말고 다 바쳐야 한다.”는 내용의 연설을 하였다.

김상옥은 1912년부터 의무금, 인구세, 3.1적립금, 독립금, 군사 운동금 등의 독립운동 자금을 냈다.

상훈과 추모

2011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김상옥의 공적을 기리어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메리다지방회」(『신한민보』, 1910. 2. 16.|1912. 1. 1.|1919. 1. 2.)
  • 「해동학교 유지동맹금」(『신한민보』, 1917. 3. 15.)
  • 「정성과 고생으로 뭉친 유카탄 진성학교의 예전과 지금」(『신한민보』, 1917. 4. 12.)
  • 「묵경지방회」(『신한민보』, 1927. 3. 31.|1928. 1. 19.)
  • 「묵경지방회 대리회장 이영순씨의 보고」(『신한민보』, 1931. 3. 19.)
  • 「각 단체는 미주한인연합회에 참가」(『신한민보』, 1931.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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