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皇甫永周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멕시코 멕시코시티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출생 시기/일시 | 1895년 1월 5일 |
|---|---|
| 수학 시기/일시 | 1917년 |
| 활동 시기/일시 | 1921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3년 |
| 몰년 시기/일시 | 1959년 2월 19일 |
| 추모 시기/일시 | 2015년 |
| 출생지 | 황해도 곡산 |
| 거주|이주지 | 멕시코 멕시코시티 |
| 학교|수학지 | 서울특별시 |
| 활동지 | 멕시코 멕시코시티 |
| 원어 주소 | Ciudad de México, México |
| 성격 | 독립운동가 |
| 성별 | 남 |
| 대표 경력 | 대한인국민회 묵경지방회 회장 |
1921년 멕시코로 건너가 대한인국민회 묵경지방회 회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황보영주(皇甫永周)[1895~1959]는 1919년 8월부터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자금 모집에 참여하였으며,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회원들과 독립운동 선전 문건을 제작하였다. 1921년 중국에서 프랑스를 거쳐 멕시코 멕시코시티로 들어가 활동하였다. 1927년 대한인국민회 묵경지방회[대한인국민회 멕시코시티지방회] 서기, 1933년 대한인국민회 묵경지방회 회장을 역임하였고, 1934년부터 1945년까지 여러 차례 대한인국민회 묵경지방회 서기를 맡았다.
황보영주의 딸은 황보 마르타이다. 외손자로 아돌포 김(Adolfo Kim)[김창수]과 로돌포 김(Rodolfo Kim)[김수명]이 있고, 외손녀로 엘레나 김(Elena Kim)[김윤인]이 있다.
황보영주는 1895년(고종 32) 1월 5일 황해도 곡산에서 태어났다. 네 살 때 평안남도 대동군으로 이주하였으며, 6년 동안 서당을 다닌 뒤 육영소학교를 마쳤다. 1914년 평양 숭실중학교를 졸업하고, 1917년 숭실대학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강계군의 영실중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1919년 8월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애국금(愛國金) 수합위원 최경선(崔景善)의 위탁을 받았고, 그해 9월 20일 독립운동 자금 56원을 모금하여 전달하였다. 같은 해 9월 독립운동 단체인 대한국민회 총무 박승명(朴承明)은 박인관(朴寅寬), 고진한(高鎭翰), 이치수(李致洙), 박치록(朴致祿), 전군보(田君甫), 김흥건(金興健) 등 10여 명과 평양신학교 지하실에서 평안남도 대회를 개최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승인을 얻어 독립운동 연락 기관으로 활동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후 황보영주는 평양신학교 학생이자 대한국민회 회원인 박승명·김재덕(金在德)과 평양신학교 기숙사에서 『독립신문』·『국민신문』을 비롯한 각종 경고문과 독립운동 자금 수령증을 인쇄하여 모집원들에게 배부하였다. 그 후 중국 상하이[上海]로 건너가 1920년 9월께 대한인거류민단(大韓人居留民團) 의사회(議事會) 의원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 흥사단에 입단하였고, 14명의 한인 학생들과 함께 프랑스를 걸쳐 1921년 초 멕시코 멕시코시티에 입국하였다.
1927년 3월 황보영주는 대한인국민회 묵경지방회 서기를 맡았고, 1933년에는 대한인국민회 묵경지방회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그해 1월 29일 황보영주는 그동안 정체된 묵경한인청년회의 활성화를 위하여 부흥회를 개최하였고, 묵경한인청년회의 재무와 교육부장을 맡았다. 1934년부터 1935년까지 대한인국민회 묵경지방회 학무원, 1936년과 1938년, 1940년 대한인국민회 묵경지방회 서기로 활동하였다. 1941년 12월 「묵경지방회 청년가」 등을 비롯한 여러 시가(詩歌)를 지었다.
태평양전쟁 발발 직후 멕시코시티의 3대 일간지에 1941년 12월 20일 자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대일 선전 포고와 한국의 독립운동, 멕시코 한인들의 입장을 게재하였다. 태평양전쟁기에는 멕시코 한인의 안전과 민족 독립을 선전하는 활동을 하였다. 광복 이후 황보영주는 멕시코 한인 사회의 단결을 강조하면서, 대한인국민회 묵경지방회 활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1959년 2월 19일 멕시코시티에서 사망하였다.
2015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황보영주의 공적을 기리어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