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崔秉德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 지역 | 멕시코 유카탄주 멕시코 베라크루스주 멕시코 멕시코시티 |
| 시대 | 근대/개항기 |
| 출생 시기/일시 | 1905년 |
|---|---|
| 활동 시기/일시 | 1905년 5월 |
| 활동 시기/일시 | 1940년 12월 1일 |
| 활동 시기/일시 | 1973년 |
| 몰년 시기/일시 | 1985년 |
| 거주|이주지 | 멕시코 유카탄주 |
| 활동지 |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시 |
| 활동지 | 멕시코 베라크루스주 |
| 활동지 | 멕시코 멕시코시티 |
| 원어 주소 | Yucatán, México|Veracruz, México|Ciudad de México, México |
| 성격 | 작가|사회 활동가 |
| 성별 | 남 |
| 대표 경력 | 한국·멕시코협회 회장 |
1905년 5월 부모님과 함께 멕시코로 건너간 이민 1세대로, 멕시코에서의 생활을 기록한 『교포역설』의 저자이자 사회 활동가.
최병덕(崔秉德)[1905~1985]은 가족을 따라 멕시코 유카탄주로 이민을 갔다. 어릴 때부터 멕시코 각지를 돌아다니며 생활하였고,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대한인국민회 코앗사코알코스지방회, 대한인국민회 묵경지방회에서 활동하였다. 광복 후 한국·멕시코협회[Cormex: Coreano Mexican]의 회장으로, 초청을 받고 한국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1973년 자서전이자 멕시코 한인의 역사를 그린 『교포역설』을 펴냈다.
초명은 최인출(崔仁出)이며, 스페인어 이름은 호세 산체스 팍(José Sánchez Pac)이다. 아버지는 최정식, 어머니는 박씨(朴氏)이다. 부인은 김대녀이고, 동생은 최인대, 여동생은 최묵순이다.
최병덕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1905년(고종 42) 5월 부모님과 함께 멕시코로 이민을 갔다. 유카탄의 에네켄 농장 한글학교에서 천자문을 배웠고, 일곱 살 때 부모님을 따라 오학기나[멕시코 베라크루스주 헤수스 카란사 와하케뇨]로 이주하였다. 유카탄으로 돌아와 에네켄 농장에서 일을 하였으며, 1925년 의무금으로 10페소를 냈다. 1928년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학무원 후보가 되었다. 1927년 메리다에서 김봉걸의 딸 김대녀와 결혼하였다.
1931년 최병덕은 베라크루스주 아구아 둘세(Agua Dulce)의 엘아길라(El Aguila) 석유 회사에 들어가 배터리 계측을 하였다. 1939년에는 베라크루스주 코아트사코알코스 지역 한인 이주자들이 세운 대한인국민회 코앗사코알코스지방회에서 활동하였으며, 1940년 12월 1일 대한인국민회 코앗사코알코스지방회 교육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이후 베라크루스주 미나티트란(Minatitlán)의 석유 회사에서 일하다가 멕시코시티로 이주하여 대한인국민회 묵경지방회에서 활동하였다.
최병덕은 광복 후 대한인국민회 묵경지방회 회장으로 선출되었고, 1955년 멕시코 이민 50주년 기념식를 주관하였다. 1962년 한국·멕시코협회의 회장으로 초청을 받고 한국을 방문하였다. 이후 멕시코시티에서 활동하다가 1985년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