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테말라 용병사건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과테말라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발생|시작 장소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시
원어 주소 Guatemala|Mérida, Yucatán, México
성격 용병사건
관련 인물/단체 이근영|황면주|이정구
정의

1916년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에서 이근영 등이 과테말라 반군에 용병으로 참여할 동포들을 모집한 후 돈을 가로채고 참여한 한인 용병들이 학대와 전쟁, 풍토병으로 사망한 사건.

개설

1909년(순종 3) 5월 12일 유카탄 반도의 한인들은 4년간의 노동 계약 기간이 끝나면서 자유를 얻게 되었다. 노예와 같은 생활에서는 해방되었지만, 곧바로 멕시코혁명이 일어나면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였다. 1911년 9월에는 과테말라로 옮겨 가는 사람들도 생겼으며, 이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사망하기도 하였다. 숭무학교의 창설자 이근영 등은 1916년 멕시코 유카탄에서 한인 청년 40여 명을 과테말라 반군의 고용병으로 참전시키고, 그 대가로 돈을 받아 독립운동 자금으로 사용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한인 용병들은 전사하거나 풍토병으로 사망하였다.

멕시코 한인들이 과테말라 반군에 참여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극심한 경제난에 있었다. 『신한민보』에 따르면 “재묵 동포의 생활 곤란이 사지로 몰아들임을 생각함에 측은한 마음이 뼈저리다.”라고 할 정도로 멕시코 한인들의 생활난은 심각하였다. 당시 멕시코혁명군에 참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베라크루스주 헤수스 카란사 와하케뇨에서 거주하던 김용환은 멕시코혁명군에 투신하였다가 전사하였으며, 정춘식·김순봉·최선칠 등은 멕시코 관군에 투신하여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역사적 배경

1909년(순종 3) 5월 12일 유카탄 반도의 한인들은 4년간의 노동 계약 기간이 끝나면서 자유를 얻게 되었다. 노예와 같은 생활에서는 해방되었지만, 곧바로 멕시코혁명이 일어나면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였다. 1911년 9월에는 과테말라로 옮겨 가는 사람들도 생겼으며, 이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사망하기도 하였다. 당시 과테말라는 독재자 에스트라다 카브레라(Estrada Cabrera)[1857~1924]의 집권에 반기를 들고 반군과 정부군 사이에서 내전이 일어난 상태였다.

경과

멕시코 한인들은 경제적 곤란 때문에 과테말라 반란군에도 들어갔고, 멕시코혁명에도 참전하였다. 숭무학교의 창설자 이근영은 황민주·이정구와 함께 메리다에 왔는데, 당시 20세에서 25세 사이의 청년 25명이 메리다 시내의 혁명군 징병 사무소를 찾아다녔다. 이근영은 이러한 한인 청년들을 대표해서 혁명군 징병소를 방문하여 이들 모두를 혁명군에 입대시켰다. 김동현메리다에서 한인 청년들을 모집하였다. 당시 고용금은 미화 5원, 승전하면 300만 원을 받기로 계약하였다. 이근영 등 멕시코의 한인들이 과테말라 혁명군에 참전한 이유는 ‘300만 원’이라는 엄청난 자금 때문이었는데, 이 돈으로 독립군을 양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신한민보』 기사에 따르면, 이근영은 황민주의 권유로 이정구와 더불어 메리다로 와서 동포 청년 33명을 모집하고 그 외 유카탄 각지에서 모집한 청년을 합쳐 40여 명을 이끌고 과테말라 반군에 참가하였다.

과테말라 반군에 협조하였던 한인들의 활약상은, 멕시코 유학생 김순민에 의해 『동아일보』 1922년 8월 7일 자에 실렸다. 그러나 당시 과테말라 반군에 참전한 한인들은 40여 명에 불과하였고, 『동아일보』 기사에 나온 것과 같이 한인 용병들이 연전연승의 전공을 세웠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었다. 함께 반군에 참전하기로 한 황민주·이정구는 돈만 받고 과테말라 혁명군에게 한인 용병들을 넘겨주고 도망갔고, 얼마 후 이근영도 종적을 감추었다. 돈에 팔린 한인 용병들은 과테말라 혁명군에게 학대를 받기도 하고, 풍토가 맞지 않아 많은 고생을 하였다. 그들 중 8~9명은 간계를 깨닫고 틈을 타서 도망갔으나 이병은·조명윤·김상천·김옥동 4명은 과테말라 전장에서 풍토병으로 사망하였다.

결과

『멕시코 통신』, 『신한민보』 등을 통해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며 동포 사회의 분노를 일으켰다.

의의와 평가

과테말라 용병사건은 나라를 잃은 한인 이민자들의 지도자들이 과테말라의 지하 조직과 결탁한 특이한 형태의 용병 사건으로, 진실 규명이 어려운 사건으로 정리되었으나, 동포들을 총알받이로 팔아먹었다는 오명을 남겼다.

참고문헌
  • 이자경, 『멕시코 한인 이민 100년사』상·하(멕시코 한인 이민 100주년기념사업회, 2006)
  • 뭉우리돌의 바다_과테말라 정글로 간 한인들, 멕시코의 우리역사 11(https://blog.naver.com/dw1513/222723094021)
관련항목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