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야 | 역사/근현대 |
|---|---|
| 유형 | 지명/시설 |
| 지역 | 파라과이 카아과수주 |
| 시대 | 현대/현대 |
| 최초 설립지 | 파라과이 카아과수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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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어 주소 | Departamento de Caaguazú, Paraguay |
| 성격 | 제재소 |
1960년대 중반 파라과이 카아과수 지역에서 한인 이민자 김윤영 등이 설립한 제재소.
카아과수(Caaguazu) 제재소의 역사는 파라과이에 한인 이민자들이 도착하면서 시작되었다. 김윤영은 한국에서 가져온 제재기 2대 및 이후 제재소에 합류한 최진곤이 가져온 제재기로 제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후 주키리 농장에서 정착을 포기한 사람들과 아순시온에서 일거리를 찾던 한인들 중 일부가 합류하여 카아과수 제재소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1960년대 중반 파라과이에 도착한 한인 이민자 김윤영은, 한국에서 이민에 관심을 가질 때부터 이민 사업자 이관복의 조언을 받고 제재소를 차릴 준비를 하였다. 김윤영은 파라과이에 도착한 후 아레구아 합숙소에 머물다가 주키리(Jukyry) 농장으로 옮겼고, 이곳에서 일주일 정도 머물다 카아과수로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 제재소 일을 시작한 사람은 김윤영, 윤상한, 강문석, 최봉수 등이다. 이후에 최일복, 이관복, 최진곤 등이 제재소에 합류하였다. 이관복은 본래 이민 사업자였으나 최일복, 최진곤을 따라 카아과수 제재소에 왔다. 초기에는 설비가 부족하여 원목을 공급하는 일을 주로 하였고, 이후 기계들이 보충되면서 본격적으로 제재업을 시작하였다. 유문신, 김택근, 서병승 등이 제재소 일을 도왔고 사업이 활성화되면서 한인들만의 조합을 결성하였다.
제재업이 크게 번성하면서 아르헨티나, 미국 등지와 수출 계약을 맺는 등 성공을 거둔 이민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후 카아과수 제재업은 쇠퇴기를 맞게 되었다. 미국으로의 수출 부진과 조합 문제로 인한 한인 간의 의견 충돌, 자본 부족으로 인한 운영난 등이 주요 이유였다. 강문석, 강근철 부자와 홍순만, 김기준 등이 마지막까지 남아서 쇠퇴해 가는 카아과수 제재소를 부활시키고자 노력하였으나 결국 철수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