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구아 합숙소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지명/시설
지역 파라과이 센트랄주 아레구아시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원어 주소 Areguá, Departamento Central, Paraguay
성격 임시 숙소
정의

1965년 파라과이에 도착한 한인 영농이민단이 임시로 생활하였던 센트랄주 아레구아시에 있던 합숙소.

개설

파라과이 센트랄주에 한인 영농이민단 1진이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사람이 살 만한 기본 시설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한인 이민자들은 임기응변으로 마련된 아레구아(Areguá) 지역의 허름한 건물에 수용되었는데, 당시 이민자들은 그곳을 ‘아레구아 포로수용소’라고 불렀다. 이후 아레구아 합숙소는 한인 영농이민단의 대기소처럼 운영되었다.

당시 아레구아 합숙소에서 머물던 한인 이민자들을 도와준 사람이 최재윤한성욱 목사이다. 최재윤은 1963년 11월 20일에 파라과이에 도착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친구들과 여행을 왔다가 한국으로 귀국하지 않고 파라과이에 정착하였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한성욱 목사는 한국에서 신학 공부를 마친 후 미국으로 건너가 목회 활동을 하다가 미국 교회의 지원을 받아 파라과이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스페인어를 못 하는 영농 이민자들이 파라과이에 정착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변천

파라과이의 초기 이민자들은 아레구아 합숙소에서 열악한 생활을 하면서 지역에 정착할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정착 예정지를 답사한 후 어려운 현장 조건을 알게 되자 정착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파라과이의 초기 이민 형태는 농업 이민이었기 때문에 이주 한인들은 아레구아 합숙소에서 생활하다 대부분 주키리(Zukyry) 농장, 알토파라나(Alto Parana) 농장, 카아과수(Caaguazú) 제재소, 산페드로(San Pedro) 농장으로 흩어져 생활하였다.

의의와 평가

파라과이 한인 이민자들은 초기의 척박한 환경을 극복하고 협력하여 파라과이 한인회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참고문헌
  • 파라과이한인회, 『파라과이 한인 이민 35년사』(한국교육평가원, 1999)
  • 한국사 총설 DB_중남미 한인의 역사_파라과이(https://db.history.go.kr/id/oksr_006_0030_0040_0020#none)
  • 한국사 총설 DB_중남미 한인의 역사_1960년대 남미 농업 이민단의 도착과 개척 포기(https://db.history.go.kr/diachronic/level.do?levelId=oksr_006_0020_0040_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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