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야 | 역사/근현대 |
|---|---|
| 유형 | 지명/시설 |
| 지역 | 아르헨티나 리오네그로주 아베야네다시 포모나 |
| 시대 | 현대/현대 |
| 개관|개장 시기/일시 | 1965년 1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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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어 주소 | Pomona, Departamento Avellaneda, Provincia de Río Negro, Argentina |
| 성격 | 한인 농장 |
1965년 10월 15일 아르헨티나에 도착한 1차 한인 영농이민단이 리오네그로주 아베야네다 지역에 세운 농장.
아르헨티나 한인 이민은 1962년 한국 정부의 인구정책과 실업·빈곤 문제 해결책으로 추진되었던 남미 계약 이민의 하나로 시작되었다. 1965년 8월 17일 부산항에서 ‘아르헨티나 1차 계약 이민단’ 13가구 78명은 ‘파라과이 5차 이민단’ 10가구 39명과 함께 보이스벤(Boissevain)호를 타고 바다를 건너, 1965년 10월 14일 저녁 9시 부에노스아이레스 레티로항에 도착하였다.
1962년 「해외이주법」이 발효되어 해외 이민이 활성화되면서 서울의 도림교회를 중심으로 아르헨티나 이주를 희망하는 사람들을 모집하였다. 당시 브라질 이민이 성공하면서 남미 이민 붐이 일었기에 아르헨티나 이민단 모집은 어렵지 않았다. 1965년 3월 5일 아르헨티나 정부가 한인 이민 25가구를 승인하였고, 한국에서는 한국이민공사가 이민단 송출 사업을 시작하였다. 1965년 8월 17일 1차 계약 이민단 선발대 13가구 78명을 태운 네덜란드 국적 보이스벤호가 부산항을 출발하여 57일 만인 1965년 10월 14일 저녁 9시 부에노스아이레스 레티로항에 도착하였다. 이후 이들은 부에노스아이레스 자치시의 토리노 호텔에서 잠시 머물다가 그해 10월 21일 리오네그로주(Rio Negro州)의 아베야네다의 포모나(Pomona) 시내에서 2.5㎞ 떨어진 초엘레 초엘의 라마르케에 도착했고, 11월에 포모나에 있는 정착지로 들어갔다.
1965년 10월 21일 라마르케에 도착한 한인 영농이민단, 일명 ‘서울세대’는 우선 경찰서의 도움으로 2층 강당을 임시 숙소로 사용하다가, 1965년 11월 뱃짐이 도착하자 라마르케 시내에서 4㎞ 떨어진 포모나의 정착지에 들어가 천막을 치고 본격적인 농장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400만㎡의 방대한 황무지를 개간할 장비는 물론 자금과 영농 지식이 부족했기에 황무지 개간에 실패하고 이민단의 대다수가 부에노스아이레스 자치시로 이주하거나 대도시 근교 농업을 시도하였다. 1차 영농단의 마지막 잔류 가구는 1972년 6월에 농장을 떠났다.
1966년 10월 한국 정부가 지원한 낡은 농기계를 가지고 후발대로 농장에 합류한 8가구, 일명 ‘부산세대’는 ‘서울세대’로부터 흙벽돌집을 헐값에 매입하고 토질이 좋은 곳을 골라 공동 경작을 시작하였으나, 이들 역시 궁핍한 생활과 자녀 교육 문제를 견디지 못하고 대부분이 농장을 떠났다. 한국 이민자들이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자 리오네그로주는 무상으로 임대해 주었던 400만㎡ 중 대부분의 토지를 회수하였는데, ‘부산세대’인 은준기 일가가 남아서 농장을 운영하였다.
2024년 기준 ‘부산세대’인 은준기의 후손 은명희가 리오네그로주 포모나 지역에서 100만㎡ 규모의 은하수농장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