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야 | 역사/근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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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 지역 |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주 리우데자네이루시 |
| 시대 | 현대/현대 |
| 원어 주소 | Rio de Janeiro, Estado do Rio de Janeiro, Brasi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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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브라질 집단 영농 이민 중 4차에 해당하는 이민.
1962년 브라질로 건너갔던 박종식은 1963년 한국으로 귀국한 뒤, 자신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시에 있는 토지개발회사 카우사(Causa)의 아세아 총지배인이라고 소개하고 500가구의 이민 쿼터를 받아 왔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보건사회부는 리우데자네이루시에 있는 주브라질 대한민국 대사관[초대 대사 박동진]을 통해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현지 답사를 진행한 보건사회부 직원이 ‘정착 불가’라고 보고하였으나, 벌써 6개월이나 시간이 지난 뒤여서 이민 사업을 중단할 수가 없었다.
보건사회부가 500가구 대신 50가구를 허락하자, 일본 주재 브라질 외교관 페레이라(Pereira) 영사가 서울로 와서 비자를 발급해 주었다. 그런데 페레이라 영사는 한국 기자들의 질문에, 이민 허가를 내준 브라질 고이아스주(Goiás州) 메니노(Menino) 농장의 위치로 미루어 보아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지역’이라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는 있었으나 한국 이민 희망자들이 너무나도 간절히 요청했기 때문에 비자를 발급해 주었다”라고 답하였다.
46가구 448명으로 이루어진 제4차 영농 집단 이민[카우사 이민] 한인들은, 1964년 8월 18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정착 예정지인 고이아스주 메니노 농장에는 갈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곧바로 도시 상파울루로 향하였다.
이민 사업을 추진한 박종식도, 보건사회부도, 이민 비자를 내준 일본 주재 브라질 영사도 카우사가 이민을 추진한 땅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불모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미 3차에 걸쳐 송출된 한국 농업 이민자들이 농장을 이탈했기 때문에 그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즉 카우사 이민은 1960년대 한국에서 브라질로 이주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