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초청 이민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볼리비아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64년 9월 18일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64년 11월 15일
원어 주소 Bolivia
영문 주소 Bolivia
정의

1960년대 중반 브라질 상파울루 주재 볼리비아 영사와 이철희가 추진한 초청 이민.

개설

볼리비아 초청 이민은 이철희가 주도하여 추진하였는데, 브라질 정식 이민 허가를 받을 수 없었던 이민 희망자들에게 볼리비아 비자를 받게 하고, 희망에 따라 브라질 영주권을 얻게 도와주려고 하였다. 그러니까 볼리비아 초청 이민은 브라질 이민을 목표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내용

이철희는 원래 브라질의 법규에 따라 영농 이민을 별도로 추진하였으나 지권 문제가 발생하여 이를 포기하였다. 그런데 볼리비아 당국의 초청장을 받은 세 가족이 1963년 9월에 항공편으로 출국했다는 소식을 듣고 주일 볼리비아 대사관을 통해 개인 자격으로 볼리비아 이민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주일 볼리비아 대사관은 희망자에 대해 개인 초청 이민 형식을 취하고 볼리비아 비자를 발급하였다.

볼리비아 비자를 발급받은 한국인들은 카우사(Causa) 이민 후진과 합동해 같은 이민선을 타고 1964년 9월 18일 부산항을 출발하여 그해 11월 15일 리우데자네이루에 도착했다. 볼리비아 1차 이민단 가구주는 김수산, 원성용, 이경덕, 유기정, 김성권, 조학준, 이형철, 최경관이었다. 이들은 배가 홍콩에 정박했을 때 주홍콩 브라질 영사관에서 브라질 경유 비자를 받았다. 이후 리우데자네이루에 도착한 사람들은 이철희의 안내로 상파울루 임시 거처에 거주하였다.

브라질을 경유하는 비자의 체류 기간은 15일이었으므로 볼리비아 초청 이민자들은 이 기간에 브라질 영주권을 취득하고자 노력하였다. 볼리비아 초청 이민단은 브라질 정착을 위해 이주 화물에 한국의 상품들을 싣고 왔고, 이를 처분하여 영주권 수속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는 한편 상파울루에 거처를 마련하였다. 자연스레 이주 이민 화물과 관련한 경제 활동의 규모가 점차 커지게 되었고 조직적으로 운영되었다. 이렇게 볼리비아 초청 이민단으로 건너온 사람들이 1년 만에 약 720명[120가구]이나 되었다. 이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도 넉넉한 편이었고, 부산과 대구의 시장에서 활동하던 상인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볼리비아 초청 이민자들은 봉제업과 위탁 판매를 생업으로 하며 브라질에서 자리를 잡아 갔다. 그러나 볼리비아 초청 이민은 이주 화물 위탁판매 중개업자 간 문제와 밀수 문제, 통관 심사 강화, 비리 문제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볼리비아 정부가 이 일에 연루된 자국 영사를 파면하고 한국인 초청 이민 허가를 중단하였다.

참고문헌
  • 오응서, 『아마존의 꿈』-브라질 한국인 이민 40년 회고(남미동아일보사, 2004)
  • 브라질한인이민사 편찬위원회, 『브라질한인이민 50년사』-1962~2011(교음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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