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大韓人國民會-地方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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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 지역 | 쿠바 아바나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설립 시기/일시 | 1937년 1월 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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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 설립지 | 쿠바 아바나 코코솔로 에스페란사 12812 |
| 주소 변경 이력 | 쿠바 아바나 라 테라자 데 솔 409 |
| 주소 변경 이력 | 쿠바 아바나 지저스 마리아 107 |
| 원어 주소 | La Habana, Cuba |
| 성격 | 독립운동 단체 |
| 설립자 | 안순필|이인상|서병학|문무봉|이종헌 등 22명 |
1937년 1월 17일 쿠바 한인들이 아바나에 세운 대한인국민회 지방회.
아바나에 거주하였던 한인 22명은 1937년 1월 17일 안순필의 사택에 모여 대한인국민회 아바나지방회를 설립하였다. 초대 집행위원장은 이인상이었고, 서병학과 문무봉을 각각 서기와 총무로 뽑았다. 회관은 이종헌[로베르토 리(Roberto Lee)]의 집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둔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의 설립 근거에 따라 한인의 자치와 권익 옹호, 교육과 실업 부흥, 조국의 독립운동을 도모하였고, 어려움을 겪는 한인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대한인국민회 아바나지방회는 설립 이후 별도의 건물을 갖지 못한 채 이종헌과 안순필의 집에 모여 모임을 열었다. 이종헌은 처음에 목공일을 하였지만 점차 성장하여 가구 공장을 운영하였는데, 1938~1939년과 1941~1945년에는 대한인국민회 아바나지방회 집행위원장을 맡기도 하였다. 아바나 코코솔로(Cocosolo) 에스페란사(Esperanza) 12812에 자리한 이종헌의 집이 대한인국민회 지방회관으로 이용되었다. 솔(Sol)가 409번지에 있던 다른 한인의 집도 대한인국민회 아바나지방회의 회관으로 사용되었으며, 솔가 주변에 사는 한인들이 이곳에 자주 모여 환갑이나 기타 행사 등을 하였다.
안순필은 아바나 지저스 마리아(Jesus Maria) 107번지에 살았는데, 1937년에 이곳에 한인 2세의 한국어 교육을 위해서 흥민국어학교를 설립하여, 이듬해 교장을 맡기도 하였으며, 이 집도 광복 이후 대한인국민회 아바나지방회관으로 사용되었다.
대한인국민회 아바나지방회는 쿠바 한인들의 안녕과 권익을 보호하는 데 앞장섰으며 독립운동 기관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대한인국민회 아바나지방회는 대한인국민회 카르데나스지방회,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와 함께 1943년 4월 18일 이종헌을 단장으로 한 재큐한족단을 조직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승인과 후원, 재미한족연합위원회의 독립운동 지원, 쿠바 한인의 안녕과 권익 보호, 독립금 모금 운동 등에 적극 나서기도 하였다.
대한인국민회 아바나지방회는 1950년대 초 한인 회원이 감소하면서 자연스럽게 해체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인국민회 아바나지방회는 민족 교육과 권익 보호, 조국의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대표적인 한인 단체로, 쿠바 한인들이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해체된 뒤에도 새로운 쿠바 한인후손회가 만들어지는 데 기초가 되었던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