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야 | 역사/근현대 |
|---|---|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 지역 | 쿠바 아바나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설립 시기/일시 | 1943년 4월 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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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 설립지 | 쿠바 아바나 |
| 원어 항목명 | Colonia Koreana de Cuba |
| 원어 주소 | La Habana, Cuba |
| 성격 | 한인 단체 |
| 설립자 | 임천택 |
1941년 12월 7일 일본이 진주만을 폭격하면서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였다. 이에 같은 해 12월 9일 쿠바는 미국 편에 서서 대일 선전 포고를 하고 일본 영사관을 강제 철수시켰다. 한일병합 후 국적이 모호하였던 한인들은 일본인으로 오해받거나 첩자로 의심받았다.
쿠바에 있던 대한인국민회의 3개 지방회[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대한인국민회 카르데나스지방회, 대한인국민회 아바나지방회]는 1942년 6월 15~17일, 3일 동안의 빅토리아연합회에 참가하는 등 쿠바 정부를 상대하여 활동하였다. 한인 대표로 이종헌, 서병학, 문무봉, 김성재, 안순필 등이 참가한 이 대회에서, 자신들은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속한다는 사실을 쿠바 대통령에게 전달하고 쿠바 한인 사회를 ‘자유 한인 사회’로 인정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또한 1942년 7월 4일 미국 독립 경축 행렬과 1942년 12월 9일의 쿠바 ‘선전’ 기념 제1주년 기념행사에 참가하는 등 일본과 적대 관계에 있음을 지속적으로 인식시킨 결과 한인들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었다.
재큐한족단[Colonia Koreana de Cuba]은 1943년 3월 24일 인가 신청을 거쳐 같은 해 4월 4일 출범하였다. 재큐한족단 대표는 대한인국민회 아바나지방회의 이종헌이었다. 이는 대한인국민회 아바나지방회가 수도에 있는 관계로 쿠바 정부와 긴밀히 관계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종헌은 1943년 5월 20의 쿠바 정부 수립 제41주년 기념식, 1943년 7월 4일의 미국 독립기념일 등의 행사에 참석하며 외교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재큐한족단은 정치·외교적 성격의 단체로 국적 등록 개정 청원, 임시정부 후원, 국민회 옹호, 재쿠바 동포 안녕 보장, 한국 독립 승인 선전 공작, 독립 후원금 모집 등을 목표로 하였고, 4월 18일에 공식적인 발족식을 가졌다.
재큐한족단은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의 활동을 지원하고, 쿠바 거주 한인의 안녕 보장, 독립운동 후원금 보내기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재큐한족단은 쿠바의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도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독립 자금 후원 등 다양한 외교 활동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