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大韓人國民會-地方會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 지역 | 쿠바 마탄사스주 마탄사스시 핀카 엘 볼로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설립 시기/일시 | 1921년 6월 14일 |
|---|---|
| 최초 설립지 | 쿠바 마탄사스주 마탄사스시 핀카 엘 볼로 |
| 원어 주소 | Finca El Bolo, Matanzas, Provincia de Matanzas, Cuba |
| 성격 | 독립운동 단체 |
| 설립자 | 박창운|서문경|김치일|장영기|임병일|임천택|이세창|이인환|박두현|김덕순 |
1921년 6월 14일 쿠바 한인들이 마탄사스주 마탄사스시 핀카 엘 볼로에 설립한 대한인국민회 지방회.
쿠바로 온 한인들은 마탄사스의 핀카 엘 볼로(Finca El Bolo)에 집단적으로 거주하였다. 마탄사스로 이주하고 얼마 후 아바나 주재 일본 영사관에서 한인들도 일본 재외 국민으로 등록할 것을 강요하였다. 이에 박창운을 비롯한 한인들은 등록을 거부하는 한편, 이런 일이 재발하지 못하도록 한인 대표 기구를 만들기로 결의하고 1921년 6월 14일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를 조직하였다.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는 그해 11월 1일 마탄사스 지방 정부에 정식으로 관허장을 신청하였다. 대한인국민회 마탄사스지방회로도 불렸다.
대한인국민회의 설립 근거에 따라 한인의 자치와 권익 옹호, 교육과 실업 부흥, 조국 독립운동을 도모하였고, 어려움을 겪는 한인들을 구제하고자 설립되었다.
1905년(고종 42) 멕시코로 건너갔던 한인들은 쿠바의 우수한 교육 문화 시설, 설탕 산업의 활황 등의 소식을 전해 듣고 다시 쿠바로 넘어갔다. 1921년 3월 25일 한인 300여 명은 라스투나스주 마나티항(Mananti港)에 도착하였는데, 그즈음 설탕 가격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사탕수수 산업이 불황기에 접어들었다. 한인들 일부는 간신히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을 하였지만, 고된 노동에 비해서 임금은 생활을 꾸리기조차 힘든 상태였다. 5월 31일 김세원과 박창운이 마탄사스 핀카 엘 볼로에 있는 에네켄(henequén) 농장 주인과 계약을 맺었다. 한인들은 이미 멕시코의 에네켄 농장에서 일을 해 봤고, 쿠바의 에네켄 산업이 점차 활성화되었기 때문에 핀카 엘 볼로 마을로 이동하여 한인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 영사관에서 한인들을 일본 국민으로 등록하려고 하였다. 60여 명의 한인은 이에 반발하면서 임시 공동회를 개최하고는, 1921년 6월 14일 쿠바 한인을 대표하는 자치 기구이자 공식 대표 기구로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의 설립을 의결하였다. 이어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둔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에 인준을 요청하여 그해 7월 6일에 인준을 받았고, 11월에는 마탄사스시의 허가까지 얻었다. 1921년 9월과 1923년 3월에는 각각 대한인국민회 마나티지방회와 대한인국민회 카르데나스지방회가 설립되었다.
1941년 당시 쿠바에는 360~370명 정도의 한인이 거주하였는데, 그 가운데 카르데나스에는 100여 명, 아바나에는 40여 명, 다른 지역에 2~5명 정도가 거주하였던 반면 마탄사스에는 100여 명이 살았다.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는 설립 초기에는 회원들이 급격히 감소하여 모임을 유지하기도 어려웠지만, 점차 거주 한인이 늘면서 모임의 규모도 커져서 쿠바의 대표적인 한인 기구로 자리 잡게 되었다. 초대 회장인 서문경을 중심으로 김치일, 장영기, 양춘명, 박창운, 임병일 등이 회장 겸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였고, 임천택, 이세창, 이인환, 박두현, 김덕순 등도 주요 직책을 맡았다.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는 쿠바 한인들의 안녕과 권익을 보호하는 데에 앞장섰으며, 독립운동 기관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1922년 11월에는 핀카 엘 볼로 한인 마을 안에 민성국어학교를 설립하여 한인 2세 후손들에게 한글과 함께 한국의 역사 및 문화를 교육하였다. 또한 대한인국민회 카르데나스지방회, 대한인국민회 아바나지방회와 함께 1943년 4월 4일 이종헌을 단장으로 한 재큐한족단을 조직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승인과 후원, 재미한족연합위원회의 독립운동 지원, 쿠바 한인의 안녕과 권익 보호, 독립금 모금 운동 등에 적극 나서기도 하였다.
1944년 말 핀카 엘 볼로 농장이 팔리면서 한인들이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게 되었고, 이에 따라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 회원들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1950년대 초 재정적인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해체되었다.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는 민족 교육과 권익 보호, 조국의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대표적인 한인 단체로 쿠바 한인들이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해체된 뒤에도 쿠바 한인후손회가 만들어지는데 기반이 되었다고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