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인국민회 탐피코지방회

한자 大韓人國民會-地方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멕시코 타마울리파스주 탐피코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17년 2월
최초 설립지 멕시코 타마울리파스주 탐피코
원어 주소 Tampico, Tamaulipas, México
성격 독립운동 단체
설립자 김익주|최창익 등
정의

1917년 2월 멕시코 한인 이민자들이 타마울리파스주 탐피코에서 조직한 대한인국민회 지방회.

개설

멕시코 한인들이 유카탄주 메리다에서 1,460㎞ 떨어진 멕시코만(灣) 연안의 유전 항구 도시 탐피코(Tampico)로 언제 이주하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멕시코혁명[1910~1917] 기간 중 메리다에서 건너온 김익주와 멕시코시티에서 건너온 최창익 등이 1917년 2월에 대한인국민회 탐피코지방회를 조직하였다. 비록 규모는 작았지만 회원 각자의 애국심과 독립금 모금 동참 열기는 뜨거웠고, 현지 멕시코 교회나 중국인 단체들과의 연대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설립 목적

대한인국민회의 설립 목적은 “교육과 실업을 진흥하며 자유와 평등을 제창하여 동포의 명예를 증진하며 조국의 독립을 광복케 함”에 있다[장정 제2조 참조].

변천

대한인국민회 탐피코지방회의 역대 회장은 1921년 김영호, 1922년 김익주, 1923~1925년 이건세, 1925~1926년 최창선, 1927년 박경선, 1929~1931년 최창선, 1928년 김수권, 1932년 김근필, 1933년 방영화 등이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대한인국민회 탐피코지방회는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의 규칙을 따르는 산하 조직으로서 매월 1회 통상회를 개최하고 이를 중앙총회에 보고하였다. 회장, 부회장, 총무, 서기, 재무, 법무, 학무, 구제, 사찰, 외교원, 평의원 등으로 구성된 통상회는 제반 업무를 처리하고, 수입과 지출을 결산하였다. 회의 일체 사무를 관리 감독하는 임기 1년의 회장은 매년 임원 성명록, 회원 성명 거주록, 재무 회계부, 사업 성적서 등 관련 서류를 수정 보고하였다.

주요 활동으로는 1917년 2월 대한인국민회 총회 창립 기념식을 열었고, 3월에는 3·1운동 기념식, 11월 임원 교례식과 송구영신회 등을 거행하였다. 이들 행사는 대부분 개회, 기도, 애국가 제창, 국기에 대한 경례, 연설, 만세 삼창, 폐회, 다과 등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1918년 2월 1일 김익주의 집에서 대한인국민회 창립 10주년 기념식 행사를 하였고, 그해 자치 경찰서를 조직하였다. 1919년에는 파리강화회의 대표단을 위한 특별 기도회, 대한민국임시정부 후원, 한국어 신문·잡지 내용 번역 및 현지 사회 전파, 「독립선언서」 구매, 상하이 대한적십자사 가입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22년에는 성명록 및 귀국자를 조사하였다.

1926년에는 순국열사에 대한 헌화, 1928년 현지 중국인 단체와의 연대, 1932년 일본 침략에 맞서 싸우는 중국 군대를 후원하였다. 1941년에는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독립금 모금 운동을 하였다. 194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시청 태극기 현기식을 지지하였으며, 대한인국민회 한인 증명권 발급을 신청하였다. 1943년에는 한인 동정 보고와 미국 이주 대상자 보고 등의 활동을 하였다. 특히 식당 경영으로 많은 돈을 번 김익주대한인국민회 탐피코지방회 운영과 독립운동 후원에 기울인 열성과 노력은 타의 모범이 되었다.

현황

2024년 기준 탐피코에는 탐피코 한인회[회장 김용찬]가 있고, 포스코의 아연 도금 강판 생산 공장, 한식당[너구리, 순보캐], 한국식료품점[Kisuna Mexico] 등이 있으나 한인 후손들과 관련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의의와 평가

대한인국민회 탐피코지방회에 소속된 한인 동포는 수십 명에 불과하였고 경제 사정도 넉넉하지 않았지만, 1918년 6월 탐피코를 방문한 안창호와의 인연 때문에라도 한인의 의무를 다하려는 애국 열정과 정성 어린 독립운동 후원은 칭찬받기에 충분하였다.

참고문헌
  • 김도형, 「멕시코 지역 대한인국민회의 조직과 활동」(『국사관논총』107, 국사편찬위원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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